▲ 배창일 편집국장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상선 발주가 줄어들면서 조선업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해양플랜트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서 뜻하지 않은 호황을 맞았다. 조 단위 수주가 이어지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해양플랜트 사업에 투입됐다.

그러나 잠시였다. 셰일가스가 개발되고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해양플랜트는 발주가 급감했다. 저유가로 인한 세계 발주량 감소, 중국과의 경쟁, 공급과잉, 선가 하락 등의 문제 때문에 조선업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여기에다 설계 엔지니어링, 기자재 국산화 등 충분한 기술력 확보 없이 무리하게 수주한 해양플랜트는 조선사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핵심역량의 미흡은 납기지연으로 이어졌고 이는 최종적으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지난달 26일 정부는 조선산업을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으로 지정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고 5대 경기민감업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를 점검했다.

금융위는 구조조정 대상을 경기민감업종,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 및 개별기업, 공급과잉업종 등 세가지 트랙로 나누겠다고 밝혔다. 경기민감업종에 선정된 조선업종은 구조조정 '1트랙'으로 설정됐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자산매각 3587억원, 인력감축 709명, 원가개선 등 지난해 마련된 정상화 방안에다 추가 인력 감축, 급여체계 개편 등의 추가 자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삼성중공업은 주 채권은행이 최대한의 자구계획을 징구하고, 선제적 채권보전 차원에서 자구계획 집행상황을 주채권은행이 관리하기로 했다.

조선 빅3에 대한 합병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선종별 수급전망과 국내 조선업 전반의 미래 포트폴리오, 업체별 최적 설비규모, 협력업체 업종전환 방안 등을 위한 조선업계 공동 컨설팅이 추진된다.

자산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이에 따른 지원 역시 조선업계의 자구계획 이행 여부를 파악한 뒤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몸집을 최대한 줄여 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버티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산업 슬림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경기가 살아나도 조선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1만3000명 수준인 직영 인력을 2019년까지 1만명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지난 2년 동안 약 1500명을 줄인 삼성중공업은 올해도 상시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 중에 있다. 또 수원사업장, 당진공장 등 자산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신규 수주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조선 빅3의 수주잔량은 세계 상위권에 속해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수주잔량은 지난달 말 기준 118척, 78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1위다.

2위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450만CGT·95척), 3위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439만CGT·81척)였다. 현재 남아있는 일감으로는 길게 2년 정도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어떻게 버티느냐다. 정부가 나서 조선업에 구조조정의 칼을 대고 있지만 앞으로의 비전이 없는 근시안적 구조조정에 그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정부가 부실기업 정리 시각으로 접근하면 조선업 위기는 계속될 것이며, 이는 중국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와 업계 자율적인 구조조정 추진방향을 수립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선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시안적 구조조정에 기댈 것이 아니라 생산 기반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엔지니어링 역량과 인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제는 양대 조선소 직영 근로자들의 능력치다.

지금까지 조선업 현장은 더 어렵고, 더 힘들고, 더 위험한 일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맡겨왔다. 직영 근로자들은 더 쉽고, 덜 위험한 일에 투입됐다. 노조를 위시한 직영 근로자들이 작업의 숙련도와 의식 제고를 위한 노력을 얼마만큼 해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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