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 주말엔 아주 오랜만에 고전오페라를 관람하는 여유를 누려 보았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제 6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에 출품한 무악오페라단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기 위해 상경을 했는데, 3일간의 공연 중 마지막 일요일 공연을 골라 보게 되었다.

동행인이 있어 자가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천안을 지날 쯤부터 차량이 심하게 정체되기 시작했고 도착도 하기 전에 피곤이 밀려 왔다. 주말 차량정체가 예상됨에도 출타를 결심하게 된 데는, 이번 오페라의 주역이 10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서게 되는 프리마돈나 홍혜경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홍혜경이 출연하는 첫째날과 마지막날 공연티켓은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매진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분야에 종사한 세월을 무기 삼아 어렵게 티켓을 확보했고 설레는 맘을 안고 예술의 전당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세 사람의 여배우를 두고 트로이카 시대로 일컬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히 이런 표현의 이면에는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는 당대의 완곡한 자극이 내재되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의 문화로 애잔하게 남아 버리고 만다.

대중예술이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80년대 이후 우리 성악계의 여성 트로이카로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을 꼽는 데 주저하는 클래식 애호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랴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을 했고 화려한 기교를 장기로 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수미가 각종 국가행사나 명성왕후 OST 작업 같은 대중의 영역에도 한 번씩 얼굴을 내밀고, 신영옥 또한 서정적인 음색과 고급스런 이미지로 국내 애호가들과 꾸준하게 만남의 기회를 가져왔던 데 반해, 홍혜경은 줄리어드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메트콩쿠르에서 우승하여 1984년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에서 '세르빌리아'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데뷔한 이래, 31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바쁜 스케줄과 동선으로 인해 국내 팬들과는 조금은 소원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애호가 그룹에선 홍혜경의 평가가 늘 고점을 지켜왔던 것 같다.

이번 공연은 작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면서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작품을 맡은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빈에서 로렌초 다 폰테를 만나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다 폰테는 늘 "오페라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대본에 달려 있다"고 호언했다. 탁월한 언어감각과 흥행 감각으로 무장된 다 폰테와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의 만남은 어쩌면 예정된 성공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모차르트 최고의 걸작 오페라로 꼽히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세 편의 대본은 모두 다 폰테의 손끝에서 나왔다.

파리 출신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는 희극 3부작을 남겼는데,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를 진 어머니'가 그것들이다. 이들은 순서대로 서로 스토리의 연결성이 있었고 당시로선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작품들이다.

이들 연극작품이 작곡가를 만나 성공한 케이스가 1782년에 작곡가 파이지엘로가 발표한 '세비야의 이발사'인데, 여기에 자극 받은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고 로시니는 1816년, '세비야의 이발사'를 리메이크 했다. 물론 현재 잘 알려져 연주되고 있는 작품은 로시니 버전이다.

'피가로의 결혼'이 연극으로 파리에서 초연될 무렵, 당시 루이 16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작품의 상연을 전면 금지했다. "참을 수 없이 끔찍한 작품이군. 절대로 상연하면 안 돼!" 라며 국왕 뿐만 아니라 귀족들 대부분이 치를 떨며 분개했다고 한다. 아마 기존의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작품의 정치성 때문이었을텐데 결국 보마르셰의 이런 문학적 저항은 몇 년 후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현실화되고 만다.

'피가로'는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는 모든 복잡한 일들을 척척 완수하는 해결사 이발사로 나오면서, 여주인공 로지나와 알마비바백작과의 사랑을 완성시켜 주는 가교 역할을 하지만,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자신과 약혼자인 수잔나 사이에서 백작부인으로 변신한 로지나를 배신하고 소위 첫날밤을 주인이 가지는 '초야권'을 행사하려는 일종의 지배권력에 맞서는 새 신랑으로 그려진다.

홍혜경은 이번 공연에서 '백작부인' 역할을 맡으면서 '희극'이 '비극'보다 어렵다는 오랜 상식을 존중하고자 하는 듯 했다.

오랜만의 오페라 나들이로 하행선은 마음만큼 시원스레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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