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네팔에서 리히터규모 7.9의 강진이 일어난 지 열흘을 넘기고 있다. 피해집계가 계속되고 있어 아직은 사망자수나 재산피해 등을 특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사망자수가 만명을 넘어설 것 같다는 추정과 수많은 문화유산이 거의 파괴 또는 유실되었다는 정도가 현재 상황이다. 연이어 파피아뉴기니에서도 진도 7규모 내외의 지진이 발생해 지구촌 전체가 지진이라는 재앙에 예민해져 있다.

이번 네팔지진과 관련해 프랑스 연구진들이 이미 한달 전에 이 지역에서의 지진을 예측했다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이 같은 류의 이야기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무성한 뒷얘기들 정도로 들린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지진(地震)은 자연적, 인공적 원인으로 인해 지구의 표면이 흔들리는 현상이라고 기술돼 있다. 자연적 이유로는 단층의 순간적인 위치이동으로 인해 생기는 탄성에너지의 방출이나 화산활동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지진에는 전조현상이 있고 감각이 발달한 동물들의 경우 이를 선제적으로 감지하여 몸을 옮겨 스스로를 지킨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지능이 뛰어나고 과학기술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는 인간들이 이 원시적인 위기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유라시아판 내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불규칙성으로 인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내성이 없어 지진발생시 원활한 대처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불안감은 늘 잠재돼 있는 상황이다.

영화 속 장면을 보면, 지진이 나서 갈라진 땅 속으로 집과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이 마구 빨려 들어가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하세계의 신들이 작정하고 빨아 당기는 것처럼 무서운 영상들로 재난 영화가 꾸며지는데, 실제 지진이 나면 이런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진동으로 인한 건물붕괴나 화재 그리고 쓰나미 등으로 인한 2차 피해에 의한 인명피해가 대부분이라 한다.

이런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있긴 하지만 갈수록 대형화, 고층화되고 있는 주거 환경에서 이런 조치들이 얼마나 효율적, 종합적으로 관리될지 쉽게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네팔의 경우도 이미 피해자 구제의 골든타임을 넘겼다는 판단에 따라 수습과 복구에 포커스가 이동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인지 대규모의 죽음을 접하는 모습 또한 다른 국가들과는 사뭇 달라 일사불란한 사태수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외신의 보도들도 전해지고 있다. 6월부터는 우기로 접어들기 때문에 전염병의 위험도 훨씬 높아진다고 보면 생존자를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도 불과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서 사고보다 사고 후의 대응이나 수습책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세종 때, 연려실기술 별집 제15권에 보면 "10월 보름날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20일에 혜성(彗星)이 동쪽에 나타났다. 곧 임금께 아뢰니 크게 놀라 몸소 첨성대에 올라 관측하였다. 정전(正殿)을 피하고 반찬을 줄이며 음악을 중지하고 형벌을 줄여 옥문을 활짝 열며 중외에 크게 사면하는 명을 내려, 두려워하고 삼가 반성함으로써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니, 7일만에 혜성이 사라졌다"고 기술돼 있다.

지진을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주술적으로 판단해서 접근하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 호전시켜 보려는 나랏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반듯한 잠자리도 마다하고 그럴싸한 음식은 들지 않겠다는 부분에서는 임금이 재난에 처한 백성들과 고통을 최대한 같이 해보겠다는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라 마음이 훈훈해진다.

재앙은 어떤 형태로든 올 수 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앙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전쟁이나 테러로 인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폴란드의 바르샤바광장 일대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늘 붐비는 곳이지만 사실 이 곳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공습으로 80% 이상 소실되었다가 뒤에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 낸 곳이다. 생명이 아닌 것은 이제 왠만한 것은 재현도 가능하다.

그래서 생명만큼은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실한 시점이다. 내 생명 하나도 쉽게 버리는 마당에 남의 생명을 존중해 줄 여력이 있을까 싶지만 생명에 대한 새로운 존중이 있지 않고선 자연재앙 앞에 아무리 문명으로 강화한들 가을바람에 낙엽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마음의 지진이 더 무서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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