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19세기와 20세기를 걸쳐서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는데, 이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탓에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에 깊이 빠져 있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에 많은 형제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얻은 충격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독신을 고수했던 말러는 마흔 두 살에 스무 살 연하이며 오늘날 팜므 파탈의 상징적 인물로 자주 묘사되는 알마 쉰들러와 늦은 결혼을 한다. 그 한 해 전인 1901년에 그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가 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라는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다섯 곡으로 이루어진 이 연가곡은 '대지의 노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과 더불어 말러의 특징적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수작 중 하나이다.

독일의 서정시인 뤼케르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깊이 있는 학식으로 동양의 시편들을 번역하고 개작해 유럽에 알린 것으로 유명한데, 한편으론 두 아이를 잃고 깊은 상심 속에 살다 간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 참담한 심정을 기록한 시 몇 편을 읽은 말러는 본인의 감정에 뤼케르트의 시를 이입시켜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할 당시만 해도 말러는 결혼을 하기 전이라 자식을 잃은 슬픔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알마와 결혼한 그 해에 말러는 사랑스러운 첫 딸 안나 마리아를 얻었다.

그리고 '교향곡 5번'이 초연된 1904년 여름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작곡해 총 다섯 곡으로 구성된 이 연가곡을 완성했고 이 해에 둘째 딸 안나 유스티나가 태어났다. 연가곡의 초연은 이듬해인 1905년 1월 29일, 말러 자신에 의해 빈에서 이루어졌고, 바리톤 프리드리히 바이데만이 전곡을 불렀다.

그러나 큰 딸 안나 마리아는 말러가 베를린, 로마, 빈, 상트 페테르부르크, 헬싱키 등 유럽연주여행을 하던 1907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말러는 마치 자신이 작곡했던 연가곡의 제목이 딸의 죽음을 불러온 것 같아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원래 심장이 약했던 말러는 이때 얻은 심장병으로 건강을 상실했고 작품활동에 있어서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지배했다.

이 연가곡의 첫 번째 노래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는 아이의 죽음을 겪은 직후의 참담한 심경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오보에와 호른의 전주에 이어 넋이 나간 듯 무덤덤한 바리톤은 "이런 불행을 겪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뿐이다"라며 깊은 분노와 원망을 표현한다.

두 번째 곡 '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젠 알겠네'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마지막 모습을 더없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회상한다. '너희는 눈빛으로 아빠에게 말하려 했던 거였구나. 아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운명이 너희를 데려간다고. '아이들은 멀리 떠나지만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으로 영원히 살아있다'는 구절에서는 죽음을 통한 사랑의 영원한 완성을 암시한다.

세 번째 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에는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그래서 내가 고개를 돌려 네 엄마를 바라볼 때면/ 엄마 얼굴을 먼저 쳐다보는 대신/ 난 네 귀여운 얼굴이 나타날 것 같은/ 그 곁, 문지방 뒤부터 보게 되는구나/ 늘 그랬듯 기쁨이 넘치는 밝은 얼굴로/ 네가 들어설 것 같아서 말이다, 내 귀여운 딸아"라고 지극히 일상의 모습으로 슬픔을 극대화 시킨다.

네 번째 노래 '때로 난 아이들이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아이의 죽음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이런 날씨에, 이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로 시작하는 마지막 곡은 험한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아버지의 뼈저린 회한이 담겨 있다.

그러나 노래의 후반부로 가면 음악은 "이제 아이들은 마치 엄마 집에 있는 것처럼 편히 쉬고 있네. 폭풍우를 두려워할 일도 이젠 없지. 하느님의 손길이 지켜주시는 가운데 그 애들은 엄마 곁에서처럼 쉬고 있구나"라고 속삭이는 자장가처럼 다정한 위로를 준다.

세월호 1주년이 되었다. 뤼케르트의 시에 등장하는 표현들이 자식을 세월호에 태워 보낸 어느 아버지의 심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전 국민이 말러처럼 심장병을 얻어서야 되겠는가. 말러의 제 4번 교향곡 '천상의 삶'처럼 세월호도 이제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