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지난 연말, 문화예술계의 핫 이슈는 단연 서울시립교향악단 사태였다. 재단대표가 사임을 하고 정명훈 예술감독은 서울시와 재계약하는 수순으로 마무리 되어가는가 싶더니 이번엔 느닷없는 재계약 조건이 새해를 달구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서울시향의 재단법인 출범 10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정명훈 감독은 서울시향의 전용홀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엄포성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례적으로 피아노 연주까지 직접 들려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니 이왕 시끄러워진 김에 할 말 다해보자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런 정명훈 감독의 주장이 의견피력을 넘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박원순 시장이 이미 2000여억원의 예산이 수반되는 전용홀을 세종문화회관 옆에 건립하겠다고 기본설계 용역비 2억원을 예산에 반영했다고 알려지면서부터다.

보기에 따라선 서울시향 내부 파열음의 당사자였던 재단대표와 예술감독 사이에서 박원순 시장이 정 감독을 선택했고 그를 붙들기 위해 그의 오랜 소망을 들어줬을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정 감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육성시키겠다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영입된 케이스다.

2005년 정명훈 감독은 이미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전용홀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이명박 당시 시장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그 사이 시장이 두 번 바뀌고도 이 일이 진척이 없자 이번엔 자기자리를 걸고 다시 이슈화 하는 것 같다.

최근 이 상황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A방송의 경우 이명박 시장 시절 추진했던 한강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포기라는 수순을 밟았고 오세훈 시장 시절, 반포대교 옆에 건립한 새빛둥둥섬도 당초 한류와 디자인의 메카로 만들어 보겠다던 취지와는 달리 오랜 시간 표류하다 현재 시민 휴게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런 전임 시장들의 공연장 추진사업 때는 반대하던 박 시장이 왜 서울시향의 전용홀에 발 벗고 나섰냐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바르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용홀의 개념부터 정리가 돼야 하겠다.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겐 베를린필하모니커라는 집이 있고 빈 국립오페라단에겐 빈 슈타츠오퍼라는 집이 있다. 쉽게 말해서 그들이 연습을 비롯한 각종 일상을 보낸 후 그 자리에서 바로 공연을 하는 셈이다. 악단의 홈시어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불필요한 이동과 대관을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고 최적의 음향상태를 유지하며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는 것인데 세계 유수의 악단은 거의 다 이런 홈시어터를 갖추고 있다.

정명훈 감독이 말하는 전용홀이란 바로 이런 홈시어터를 일컫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서울시향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연주와 창의적인 도전이 가능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단순히 도시디자인이나 거창한 마스트플랜과 관계없이 진행돼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올 하반기에는 서울에 또 다른 공연장이 문을 열 계획이다. 제 2롯데월드에 같이 건립되는 롯데홀이 그것이다. 조감도상으로만 봐도 최고의 시설이 될 것이란 짐작이 간다. 2000석이 넘는 클래식 전용홀로서의 면모가 대단히 기대되는 공연장이다.

이렇듯 메트로시티 서울에는 그에 걸맞는 공연시설들이 구색을 맞춰가며 준비돼야 한다. 이젠 예전처럼 공연장 하나가 이것저것 역할을 다하던 시대가 아니다. 뷔페가 아닌 전문점의 음식을 찾는 고객의 입맛까지 맞춰줘야 하는 시대이다.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건립된 통영국제음악당도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시대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교육의 가치나 방법이 바뀌고 있지만 정작 교사나 학부모가 그 시대적 가치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10년 후 우리의 문화적 욕구를 미리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과 감성을 정화하고 맡길 장치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닥치는 생업에 대한 부담이 문화라는 영역을 늘 우선순위에서 밀쳐놓고 있지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목에서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하고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화예술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정명훈이 던지는 전용홀을 박원순시장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대논리를 우리는 읽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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