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문화예술계에는 일반화돼 있는 히트상품들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계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파바로티와 도밍고, 카레라스로 라인업된 쓰리테너가 대표적일 것이고 매년 새해를 맞이하는 이맘때쯤 개최되는 범지구적인 이벤트, 신년음악회가 또한 그럴 것이다.

지금은 신년음악회뿐만 아니라 제야음악회도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의미로 연주단체나 공연장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기획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브랜드 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꼽자면 단연 빈(Vienn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라 할 수 있다.

매년 새해 1월1일이 되면 전 세계의 고전음악 애호가들은 바로 음악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Vienna) 뮤지크페라인(Musikverein)에서 열리는 빈 필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 der Weiner Philharmoniker)를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는 주로 산천을 찾아 해가 잘 돋는 뷰포인트에서 해돋이를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럽의 문화 중심도시들에서는 신년음악회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감성적 충만감을 만끽하는 것이 보편적인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신년음악회는 그냥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라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빈 필 신년음악회는 전통적으로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집안의 왈츠를 중심으로 연주곡목이 선정되는데, 금년 빈 필 신년음악회도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가 지휘봉을 잡아 주페의 '비엔나의 하루'를 시작으로 총 17곡의 왈츠, 폴카가 연주됐다. 이 중에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곡이 자그마치 11곡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오랜 전통이다.

빈 필 신년음악회에는 몇 가지 특이사항이 있는데 그 첫 번째로는 청중이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곡으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필수로 연주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지휘자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지휘자' 또는 '빈에서 음악공부를 한 사람'으로 한정해 지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 중에 지휘자에 대한 전통은 1990년대 독일 출신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를 하면서 깨어졌다.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라 할 수 있는 빈 필의 역사는 184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에는 12월31일에도 연주를 했으니 일종의 제야음악회와 겸해서 이뤄졌다고 보아진다.

지금과 같이 1월1일 한번만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1941년부터인데, 1945년 전쟁으로 인해 한 차례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74년 동안 중단없이 이 음악회는 이어져 왔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올해로 76주년을 맞는다. 최초로 연주회가 열린 해는 1939년으로 독재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먹구름 아래 죽음과 우울함이 오스트리아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이에 빈 필하모닉은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이들의 아픔을 위무하기 위해 1939년 12월31일 무지크페라인 골든홀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이제 빈 신년음악회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각인되고 있다. 전 세계 4억명이 넘는 팬들은 이 음악회 티켓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빈 신년음악회 티켓 구입은 추첨을 통해 이뤄지는데, 매년 1월이 되면 빈 필하모닉은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해에 열릴 신년음악회 티켓 구입을 위한 사전 접수를 시작한다.

그 후 티켓을 살 수 있는 대상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무작위로 선별된다. 신년음악회는 일반적인 음악회가 저녁에 열리는데 반해 오전에 시작된다. 아마 태양의 밝은 기운으로 새로운 해를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여겨진다.

세상이 좋아졌는지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빈 필이나 베를린필의 신년음악회를 메가박스같은 극장에서 볼 수 있도록 상품화했다.

현장에서 보는 감동에야 어찌 비할까마는 이 상품의 가격이 3만원 정도로 책정돼 일반 영화에 비하면 상당히 고가인데도 불구하고 좌석점유율이 90퍼센트에 육박한다 하니 이제 문화상품이라는 것이 국경에 가두어 둘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닌 듯하다.

하긴 현장에 가서 보려면 최고 140여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심지어 암표가 600만원을 넘어간다 하니 현장감이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스크린을 통해서 전달받는 감동도 꽤 호사가 아닌가 싶다.

1월21일,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비엔나왈츠오케스트라 초청공연이 신년음악회의 일환으로 열린다하니 아직 새해 분위기 만연할 때 즐겨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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