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논설위원

듬벙'은 '웅덩이'의 지방말로 우리 조상들이 가뭄에 대비해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작은 저수지를 말합니다. '용듬벙'에 대한 설화는 사등면과 연초면,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문동쪽으로 올라갈 때 오른쪽 계룡산 아래 있는 용산마을에도 용듬벙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세 곳의 이야기가 모두 비슷한 내용으로, 사등 용듬벙은 명주실 끝에 돌을 매달아 넣으면 명주실꾸러미 열두 개를 풀어 넣을 정도로 깊은데 명주실에 매단 돌이 사두섬(蛇頭島) 바깥 괭이바다로 연결된다고 했습니다.

연초면 용듬벙 이야기는 웅덩이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을 하려는데 이를 본 어떤 여자가 "저기 용이 올라간다"하고 외치는 바람에 용은 승천하다 말고 듬벙 옆 굴로 들어가 버렸다고 합니다. 용이 들어갔던 굴에서 안개가 나와 앵산 꼭대기로 올라가면 틀림없이 비가 오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용과 관련된 설화를 가장 많이 가진 곳이 용산마을입니다. 마을이름에도 용(龍)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용산마을 뒷산이 계룡산으로 거제의 주봉입니다. 계룡산도 용과 관련된 전설로 생겨난 이름입니다. 태초에 조물주가 땅덩이를 만들 때 거제섬의 중앙에 큰 산을 만들고 그 주변으로 여러 용들을 살게 했다고 합니다. 용산 마을은 계룡산 밑자락으로 용이 살았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용산 마을에서 뒷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개울가에 넓은 반석이 10여 미터쯤 푹 파여져 웅덩이가 된 곳이 있습니다. 여기가 용이 살던 곳으로 물이 얼마나 깊은지 들여다보면 물속이 검푸르고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등 용듬벙처럼 명주꾸러미의 실이 끝도 없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깊은 듬벙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룡산으로부터 흘러온 물이 이 듬벙에 고이는데 듬벙 안쪽에 굴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굴 안에 용이 살았다고 하는데 아무도 용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굴 앞에 큰 바위를 가져다 놓으면 그 바위가 자꾸 옆으로 밀려난다는 것입니다. 바위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옆으로 밀려나는 것은 굴 안에 살고 있는 용이 듬벙에 왔다 갔다 하면서 여닫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용과 물에 관한 이야기는 용산마을에서 한 고개 넘어가 구천계곡(九川溪谷)까지 이어집니다. 구천계곡은 거제의 명산 선자산(523m)과 북병산(465m)사이에 있는, 가을이 되면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곡으로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해서 구천(九天)으로 쓰는 사람도 있고, 구룡호(九龍湖)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선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정감록에 의하면 구천계곡의 물이 차고 넘쳐 삼거리 고개를 넘을 때 태평시절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는 물이 역류한다는 말인데 천지개벽이 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거제에 대우·삼성 양대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인구가 늘어나자 부족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부터 이곳에 구천댐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98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댐의 물은 삼거리고개를 넘어 북병산 용수터널을 통해 장승포 쪽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정감록의 예언대로 물이 역류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일천백리(443km) 해안선에 어우러져 있고 온화한 기후와 깨끗한 공기의 관광도시 거제는 정감록 비결에 따라 복 받은 땅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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