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곶이 더덕

남부면 갈곶이 해금강은 빼어난 절경으로 남방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린다. 해금강의 본래 이름은 갈도(葛島) 곧 칡섬이다. 산 중에 어른이라는 노자산(老子山) 정상에 올라 보면 산 준령이 칡넝쿨처럼 뻗어 있는데 그 뿌리에 해당되는 지점이 해금강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노자산과 가리산이 용의 몸이라면 갈곶이는 용의 입모양이고 해금강은 여의주를 닮았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옛날 중국에서도 이곳을 영산(靈山)으로 여기고 있었다. 천하를 통일한 진(秦)의 황제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불(徐市)을 단장으로 한 동남동녀 삼천 명을 해금강에 보내 불로초를 캐오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한 곳이다.

오래전부터 갈도에는 천년 묵은 더덕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진시황도 이 천년된 더덕이 욕심났는지 모른다. 천년된 더덕은 영물이라 새나 짐승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고 했다. 거제 읍내 장날이 되면 머리에 삿갓을 쓰고 굴건제복을 한 상주가 와서 장을 봐 가는데 그 상주가 천년 묵은 더덕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더덕의 생긴 모습이 굴건제복을 입은 상주와 비슷해서 생긴 이야기일 것이다.

불치의 병도 낫게 할 수 있는 천년된 더덕이라 만일 더덕을 잡는 날에는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욕심 탓에 사람들은 장마당에 나타난 상주만 보면 혹시 천년 묵은 더덕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짜고짜 잡는 바람에 애먼 상주들만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갈곶이 더덕이 아니요. 명진 사는 윤 아무개요."
"나는 부춘 사는 김 아무개요"
이렇게 신분을 밝혀도 더덕이 거짓말한다고 여기고
"거짓말 말아. 너는 필시 천년 묵은 갈곶이 더덕이 맞다."
하고는 실랑이를 치곤했다. 때로는 낚시꾼으로 변해 고기를 낚고 있다고 했고, 처녀로 변해 학동고개를 넘어가더라고도 했고, 동자로 변해 거제 읍내 장에 와서 장을 보고 갈곶이 가는 길을 묻더라는 등 더덕에 대한 이야기는 거제 전체에 짝 퍼져 있었다.

한의학에 달통하고 당시 최고의 명의로 이름난 양정의 추의 선생이 갈곶이 더덕을 찾으러 삼신산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명을 다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갈곶이 더덕은 정말 있는지 사람들의 궁금증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망부석 바위

해금강에는 전설이 많다. 해금강 안쪽보다는 바깥쪽 바다에는 바위들이 만물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만물상 바위 하나하나마다 전설이 담겨져 있는데, 특히 섬의 오른쪽 절벽에 우뚝 솟은 바위는 형상이 흡사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닮아 망부석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 아래에는 펑퍼짐하게 넓은 바위가 있어 여기서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갈곶이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부의 생활터전은 바다라 고기를 잡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하루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보니 남편은 아내를 두고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남편이 바다로 나가고 나면 아내는 바닷가에 나가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풍랑이 크게 일어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인은 사랑하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닷가로 나와 먼 바다를 쳐다보며 남편을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남편이 탄 배가 돌아오며 손을 흔들어줄 것 같은 생각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아내의 기다림은 애절한 그리움으로 변해갔고, 그리움이 사무치면서 아내의 몸은 서서히 움직이지 않는 돌로 변해갔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일컬어 망부석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망부석바위는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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