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배우는거제역사]거제의 구비문학 12

옥녀봉 줄기가 굽이쳐 장승포항을 감싸고 돌아 능포 앞바다에서 우뚝 멈추고 선 곳에 괴이하게 생긴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이곳이 양지암이다.

거가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장승포에서 부산 가는 여객선이 항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군함같이 생긴 바위가 머리를 쑥 내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른다.

샛바람이 불어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포말이 천지를 삼킬 듯하지만 날씨가 평온할 때는 물보라가 찰랑거리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내는 곳이다. 그 아름다운 비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 조선중기 이상서라는 한양양반이 삭탈관직돼 이곳으로 유배오면서 무남독녀 외동딸 국화와 몸종 삼돌이를 데리고 와 능포 어구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다.

국화는 어려서부터 총명해 일곱 살에 천자문을 떼고 열다섯 살에 사서를 다 배웠다. 그뿐 아니라 얼굴도 보름달같이 예뻐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규수였다.

마을청년들이 너나 할 것없이 국화를 짝사랑했지만 세도 높은 한양양반의 딸이니 사랑한다는 하소연은커녕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국화는 마을 총각들의 애모와 연정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상서의 몸종인 삼돌이도 남자인지라 종의 신분이면서도 국화를 사모했다. 그 당시 종의 몸으로 양반집 처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상전과 몸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로 몸종의 목숨까지도 상전의 손에 달려 있던 시절이었다.

적적하고 외로운 섬에서 날이 새면 만나는 사람이래야 이상서와 국화 그리고 삼돌이 뿐이었다. 이상서는 귀양살이만 풀리길 기다리면서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국화는 아버지인 이상서를 뒷바라지하는 시간 외에는 삼돌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럴수록 삼돌이의 가슴에는 국화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만 갔다.

국화는 하루 빨리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면 한양으로 돌아가 어릴 때 정혼한 김판서의 아들과 결혼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삼돌이는 국화와의 사랑이 이루지 못할 사랑인줄 알면서도 밤낮으로 국화를 그리워했다.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국화에게 끌렸고,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국화생각 뿐이었다. 삼돌이는 종으로 태어난 것이 한이 되었다. 어차피 이승에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차라리 저 세상으로 가서 이뤄야겠다는 생각으로 삼돌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를 작정했다.

피골이 상접해 자리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삼돌이를 가엾게 여긴 국화가 죽 한 그릇을 끓여다 삼돌이에게 주었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국화를 본 삼돌이는 반가워 눈물까지 흘리면서 국화가 끓여준 죽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그리움의 한을 안고 죽고 말았다.

삼돌이가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 밤, 국화는 몸이 이상해서 잠에서 깨어보니 실뱀 한 마리가 국화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깜짝 놀란 국화의 아버지가 뱀을 떼 놓으려고 해도 뱀은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국화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삼돌이의 죽은 영혼이 상사뱀이 된거야." 동리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이상서는 굿도 하고 약도 쓰고 온갖 짓을 다했지만 뱀은 국화의 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며칠 후, 국화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뛰어가더니 양지암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제야 국화의 온 몸을 감고 있던 실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지개가 한 줄기 하늘로 뻗었다.

그 후부터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했고 처녀·총각들이 혼사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면 잘 이뤄진다는 전설이 아직도 전해오고 있다. 

정리: 윤일광 논설위원(자료: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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