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래도 더 살지는 못하겠구나."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들을 앉혀놓고 유언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설마 이 넓은 거제도 산천에 아버지 병환을 낫게 할 약이 없겠습니까? 아버지를 낫게 할 약을 구해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으로 자리에 누운 아버지를 위해 그동안 효자 아들은 온갖 좋다는 약은 다 구해 보았고 이름난 의사도 찾아가 봤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루를 넘기기도 힘든 그때 도사가 나타나 효성이 지극한 아들에게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약초가 옥녀봉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옥녀봉으로 들어가 약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효자 아들의 효심에 산신령도 감동했는지 도사가 일러준 약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날은 저물고 밤은 이미 깊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갈 동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아들은 발걸음이 급해졌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어둠 속에서 재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그 약초를 먹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 재를 '울음이재(읍곡령 또는 명재)' 라고 부르며 효자를 기억했습니다.

울음이재는 아주마을과 수월마을 사이의 산길로 예전에는 장승포나 옥포에서 고현으로 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울음이재'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이 있습니다.

거제면에서 용산마을로 넘어오는 계룡산 고갯마루의 '고자산치' 전설과 연결됩니다. 옛날에는 거제면 사람들이 아주로 가려면 이 재를 넘었습니다. 거제에 살았던 남매가 아주에 있는 외가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그때가 초여름이었는데 고개 중턱 쯤 오르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우산도 준비하지 못한 터라 비를 맞으며 산길을 누나가 앞서고 남동생이 뒤따랐습니다.

초여름 날씨라 누나는 하얀 모시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비를 맞으니까 모시옷의 풀기가 죽으면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누나의 갸름한 몸매에 젖가슴이 선명하게 나타났고, 허리는 마치 푸른 수양버들가지처럼 하늘거렸습니다.

뒤따르는 동생의 눈에는 누나가 선녀처럼 보였습니다. 남동생은 자꾸 가슴이 뛰고 숨이 차면서 바지 속의 물건이 쉬지 않고 꿈틀거렸습니다. 참아야 한다고, 이래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동생의 눈에는 누나가 아닌 예쁜 여자로만 보였습니다.

"누나, 잠시 볼 일 보고 갈 테니 먼저 가."
"빨리 따라와."

계룡산의 고갯마루에 올랐는데도 남동생이 보이지 않아 누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랫도리가 피범벅이 된 남동생이 죽어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누나를 여자로 느낀 데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 성기를 돌로 찧어 죽은 것입니다.

"바보야, 그렇다고 죽긴 왜 죽어, 나한테 말이라도 해보지."

누나는 남동생을 바위틈에 흙을 덮어 묻어주고 외가가 있는 아주로 펑펑 울면서 걸어갔습니다. 그때 울면서 누나가 걸었던 양정과 아주 사이의 국사봉 둘레 산길을 사람들은 울음이재라고 불렀습니다. '고자산치'와 '울음이재'는 이런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울음이재의 전설은 효자이야기 보다는 오누이의 슬픈 이야기로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정리: 윤일광 논설위원 (자료: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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