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윤일광 논설위원

거제는 섬이긴 하지만 육지나 다름없는 큰 섬입니다. 섬이 큰 탓에 농사를 많이 지었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어업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그런 탓에 거제는 먹을거리가 풍성한 섬이었습니다.

신라 때는 서울인 경주가 가까운 탓에 거제를 잘 지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때는 서울을 개경(지금의 개성)으로 옮겨감에 따라 나라의 힘이 거제까지 미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이틈을 이용해서 왜구들이 침략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왜구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바닷가를 중심으로 노략질하던 일본해적을 가리킵니다.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경상남도 지역이며, 특히 거제는 그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왜구는 거제의 풍부한 식량을 빼앗아 그것을 군량미로 삼아 바다를 활개치고 다녔습니다.

“왜구 때문에 정말 못살겠어”
“왜구에게 시달리는 것이 지긋지긋해”

거제사람들의 원성이 쏟아지자 나라에서도 어떻게 하면 왜구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하고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나라에서 군대가 오면 도망갔다가 군대가 돌아가면 다시 침략하여 거제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군대가 거제에 남아 왜구를 막아줄 수도 없었습니다.

왜구의 침략은 고려시대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려 원종임금 때 이르러 나라에서 명령하기를

“왜구가 침입할 때마다 끈질기게 싸워 막아내는 것도 좋지만 아예 침략하지 못하도록 할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시오.”

이에 따라 거제의 살림을 맡아보는 사람들과 거제의 덕망 있는 어른들이 모여 깊이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얻어진 결론을 나라에 보고하였습니다.

“왜구들이 거제를 침략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농사나 어업이 잘되어 식량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욕심내는 양식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침략하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지만 거제 섬에서 육지로 이사하여 섬을 비워두는 곳이 좋을 듯합니다.”

이런 방안에 대하여 나라에서도 허락을 했습니다. 고려 원종 12년(1271년) 거제사람들은 거창 가조현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거제에서 거창까지는 아주 먼 길입니다. 그래도 왜구에게 시달리기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에 흔쾌히 낯선 땅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제와 거창이 합쳐졌기 때문에 지명도 제창군이라 불렀습니다. 거제사람들은 그곳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거제에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자 왜구의 침략은 뜸해졌습니다.

거창 가조로 피난간지 약150년이 지났을 때 세종임금께서 이제는 괜찮으니 다시 돌아와 살도록 허락했습니다. 거제사람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세종임금께서는 다시는 거제에 왜구가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온 이듬해에 고현성을 쌓게 했습니다.

그때 만들었던 고현성의 일부를 지금의 거제시청 옆에 재현시켜 놓았습니다.

정리 : 윤일광 논설위원(자료제공 :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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