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 마을 곳곳서 풍성하게 마련

달이 뜬다. 정월 대보름달이 뜬다. 달이 동산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지고 고개는 절로 숙여진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믿음보다 깊고 종교보다 아름답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 놀라운 힘은 바로 자연이 만들어 낸 경외함이다. 우리 조상들은 큰 나무 앞에서, 큰 바위 앞에서, 해를 보고, 바다를 보고, 달을 보고 절을 했고 소원을 빌었다. 거기에 어떤 정령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의 편안함이었고 자연에 대한 겸손함이었다.

대보름 아침에는 부산해진다. 아홉 가지 나물반찬에 오곡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나무를 아홉 짐 해야 한다고 엄마는 닦달질하신다. 본래 이 시기는 농한기다. 특히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정초(正初)의 설 기간으로 친지 어른들께 다 못한 세배가 있다면 보름까지 하면 된다. 농한기 휴식의 끝이 정월 보름이다. 이제부터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아홉 그릇의 밥을 먹고 아홉 짐의 나무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아침상에는 덥힌 청주가 오른다. 귀밝이술(耳明酒)이라 하여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일 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따라 나누어 준다. 어른 앞에서 술을 배우게 되는 첫 시작이 바로 이 때다.

상을 물리면 식구들끼리 둘러 앉아 '부럼깨기'를 했다. 부럼은 껍데기가 단단한 견과류인데 호두나 은행은 망치로 깨고 밤은 껍질을 까고 입으로 '딱' 소리가 나도록 깨무는데 이 소리에 놀라 잡귀가 물러간다고 생각했고, 부럼을 깨야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부럼과 부스럼이 비슷한 발음이라 관련지어 놓은 것 같다.

대보름 점심에는 이웃집에 밥 얻으려 간다. 세 집 이상 다른 성(他姓)씨를 가진 집의 밥을 먹으면 한 해 운수가 좋다고 했다. 얻어온 밥은 절구통 위에 앉아 먹어야 했다. 절구통은 곡식을 빻는 도구이고 보니 거기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배곯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풍경이었다.

절구통에 앉아 밥을 먹으면 영락없이 개가 다가와 얻어먹겠다고 옆에 앉는다. 정월 보름날 개에게 밥을 주면 여름 내 파리가 꾀고 개가 살이 찌지 않고 마른다고 해서 굶긴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개 보름 쇠듯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얻어 온 밥을 먹을 때만은 나 한 숟갈 먹고, 개 한 숟갈 주며 번갈아 먹는다.

정월 보름의 독특한 풍습으로 '더위팔기'가 있다. 누가 뒤에서 부른다고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돌아보는 순간 "내 더위 사 가라"하고 외치면 그 해의 더위는 돌아본 사람이 다 떠안고 간다고 했다. 이때 뒤에서 누가 부르면 돌아보면서 먼저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덤터기를 쓰게 된다.

동네 아줌마와 처녀들은 널뛰기를, 아저씨들은 석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팽이를 치거나 자치기, 제기차기로 낮 시간을 보낸다. '액연 띄우기'도 한다. '송액(送厄)'이라고 쓴 연을 하늘에 날려 보내는 일이다.

메구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을 밟는다. 이때가 명절 분위기를 가장 무르익게 만드는 순간이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신이 나서 메구패를 따라 다니며 우쭐거린다. 터가 센 곳을 찾아가 잡귀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버리는 매귀(埋鬼)행사다.

대보름 저녁 아버지는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놓아 태웠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구멍 뚫은 깡통에 송진 불쏘시개를 넣어 불을 붙이고 긴 끝을 빙빙 돌리면서 노는 쥐불놀이가 장관이다.

정월대보름의 절정은 달집태우기에서 비롯된다. 태음력을 기초로 농경사회을 이루었던 우리에게 달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처음 맞는 보름달이기에 더하다. 달은 여성으로 인격화되고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생산력과 풍요를 상징한다.

달집태우기에 대한 유래나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측컨대 음(陰)인 달(月)을 양(陽)인 불(火)로 교합시켜 주는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불이 잘 타고 연기가 아주 잘 피어오를수록 풍년이 든다고 예측했다. 달집 속에 대나무를 넣어 대나무 터지는 폭죽소리에 잡귀가 쫓겨 간다고 믿었고, 삼재(三災)가 든 사람은 한지에 이름과 생년월일, '입삼재소멸'이라는 글을 적어 속옷과 함께 달집에 넣어 불에 태웠다.

불이 거의 다 탔을 때 달집이 어느 쪽으로 넘어지는가 하는 것도 대단한 관심거리다.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에 있는 마을이,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 운수대통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세시풍습의 절반 가까이가 정월에 모여 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것으로만 보아도 정월대보름은 진정한 우리의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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