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밴 실한 암대구만 사용 해 소금으로 배 채워…상처 내지 않고 아가미와 내장 만 빼내는 것이 기술
처마 등 그늘에 걸어두고 겨울바람 쐬며 6개월가량 건조…도라지 넣고 고아 임산부 보양식으로 사용

이 씨가 잘생긴 대구로 약대구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약대구로 쓰일 대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를 가르지 않은 채 아가미와 내장을 빼내는 것이 기술이다. 아가미를 들추자 선홍색으로 빛나는 아가미가 눈에 띈다. 칼을 아가미 속으로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돌린다. 오른쪽 아가미 쪽에 몇 번 힘을 줬다가 왼쪽 아가미 쪽에 칼을 갖다 대더니 이내 아가미와 내장이 고스란히 딸려 나왔다.

"아가미와 내장을 빼 낼 때 알은 물론 다른 곳에도 상처가 나면 안됩니다. 칼로 아가미 부분을 도려낸 뒤 손으로 천천히 끄집어내면 내장이 그대로 나오게 됩니다. 대구 뱃속에 알만 남아있게 되는 거지요."

내장을 모두 끄집어냈지만 배속 가득 알이 차있던 지라 아직 배가 제법 불룩하다. 이젠 소금이 제몫을 할 차례다. 간수가 잘빠진 천일염을 조심스럽게 대구 뱃속으로 밀어 넣는다. 자칫 잘못하면 뱃속의 알이 터질 수 있어 이 씨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새하얀 소금이 대구 몸속으로 흘러내리자 불룩하던 대구배가 터질 듯 빵빵해 진다. 아가미 아래까지 소금을 채운 뒤 대구 겉에 묻어있는 소금을 털어낸다. 작업의 마지막은 볏짚이 장식한다. 알을 산란하는 곳에 깨끗한 짚을 끼워 넣은 뒤 그늘에 매달면 끝이다. 이제 부터는 겨울바람과 시간이 약대구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재료다.

"약대구를 걸어 놓으면 배 쪽으로 알이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어 짚으로 막아 놓습니다. 그러면 알은 빠져 나오지 않고 소금 간물만 짚을 따라 빠져 나가면서 약대구가 되지요. 짚이 완전히 말라붙으면 배안의 알 숙성이 끝났다고 보면 됩니다."

작업이 끝난 약대구는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옛날에는 대문 앞에 서 있던 감나무에 약대구를 걸어 놓은 뒤 비를 맞지 않도록 볏짚으로 지붕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약대구의 진미는 숙성된 알이다. 겨울바람과 서리를 맞으며 뱃속에서 꾸덕하게 마른 알은 노란빛을 띄면서 딱딱해진다. 별다른 조리없이 날로 먹는 알맛은 쫀득하고 차진 식감에 감칠맛이 더해져 시체말로 '기가 막히다'고 한다.

늦은 봄 약대구에서 꺼낸 알은 잘 보관해 두고 여름 한 철 동안 먹었다. 새빨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짭쪼름한 맛에 달아났던 식욕이 되돌아온다고 한다. 더러 알이 이빨에 붙기도 하는데, 혀끝으로 둘러 돌리면 뒷맛이 그만이라고.  

알을 뺀 약대구는 보양식으로 쓰였다. 병원이나 약이 귀했던 시절, 머리와 몸통을 찹쌀과 함께 푹 고면 노인과 아이들의 보양식으로 으뜸으로 쳤다. 또 도라지와 대추를 넣어 끓인 탕은 임산부의 산후조리와 젖을 돌게 하는데 최고였다고 한다.

"지금은 좋은 음식과 먹거리들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약대구가 다 만들어 지면 무조건 어르신들 몫이었습니다. 어린시절에는 통나무처럼 단단한 약대구를 톱으로 자르고 생긴 찌꺼기를 먹던 일이 최고의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 그 정도로 맛이 좋았지요."

소금에 절여져 간이 밴 약대구는 먹기에도 보관하기에도 좋았다. 먼 길을 떠날 때면 주머니와 봇짐에 창호지로 싼 약대구를 넣어두었다가 주막같은 곳에서 꺼내 안주로 삼았다고 한다. 땀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에 약대구 안주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궁합이다.

"어린시절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뚫고 석포에 대구를 사러가면 쌀 한 되에 대구 한 마리를 바꿔 줄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대구가 많이 났지만 약대구는 잘사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귀한 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금 대신 끓인 간장을 부어 만드는 약대구도 있다. 아가미와 내장을 들어낸 자리에 소금 대신 끓인 뒤 식힌 간장을 붓는 방법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끓여 식힌 간장을 3~4차례 부어가면서 두 세 달을 바닷바람에 말려서 먹는 것이다.

소금으로 만든 약대구에 비해 만드는 방법이 다소 까다롭고 보관이 어렵지만 전통적인 약대구와는 차별되는 맛이 있어 아는 사람들은 간장을 부어 만든 약대구를 찾는다고 한다. 간장 약대구는 생으로 먹기보다 쩌서 먹는다. 알은 특유의 식감으로, 살은 달짝지근한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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