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 많던 김학수 수월마을 이장

"해냈다!" 땀으로 일궈낸 친환경 농업
"우리 거제는 경지면적이 적어 대량생산이 어렵습니다. 결국 쌀 농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체계를 갖추는 수밖에 없지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내가 기른 쌀을 내 자식과 내 손주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농사꾼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생각은 친환경 무농약 쌀 재배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월마을 김학수 이장이 친환경 무농약 쌀 재배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5년 전인 지난 2008년부터다.

평소 좋은 먹거리,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김 이장은 때마침 불어닥친 웰빙열풍을 접하면서 친환경 쌀 생산에 눈을 돌렸다.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었던 터라 거제시에서 마련한 무농약 쌀 생산 교육에 참석해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 교육을 듣다보니 지역의 먹거리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무농약 쌀 생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주변 환경이 어쨌든 친환경 무농약 쌀 생산으로 가야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전문서적을 사서 열심히 공부하고, 삼거림 마을에서 무농약 쌀 생산을 위한 많은 정보도 얻으며 하나하나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심만으로는 부족했다. 친환경 무농약 쌀 생산을 위해서는 많은 여건이 함께 갖춰져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에서 실시한 토양검사와 수질검사 등에 합격 판정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무농약 쌀 재배에 돌입하게 됐다.

시의 지원으로 자연퇴비의 일종인 유박을 공급받아 논에 뿌린 뒤 우렁이 농법을 위한 다양한 작업을 병행했다.

김 이장이 친환경 무농약 쌀 재배를 한다는 소문은 곧바로 마을전체에 퍼졌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우려의 말을 하기 바빴다. '농약 안 치고 농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마을주민 모두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할 자신이 있었지요. 마을주민들도 입으로는 안 될 거라고 하면서도 제가 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봤습니다. 어쨌든 마을에서 처음 시도하는 무농약 쌀 재배였으니까요."

논에 물을 대고 써래질을 한 뒤 지원받은 새끼 우렁이를 논에 넣었다. 300평 정도에 5㎏씩의 우렁이가 투입됐다.

우렁이 농법의 특성상 흙을 곱게 갈아주고 높낮이를 잘 맞춰줘야 했다. 땅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면 물이 없는 곳에는 우렁이가 가지 않아 잡초제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벼를 심기 전에 우렁이를 넣어줘야만 효과가 있습니다. 물속에서 피나 잡초가 올라오면 그때 그때 갈아먹기 때문이지요. 잡초들이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면 우렁이가 먹지를 않아 낭패를 봅니다. 논바닥을 고르게 하는 것도 일정한 수위를 유지해 우렁이가 논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겁니다."

모내기가 끝나고 벼가 자랄 무렵부터는 끊임없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우렁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논에 물을 공급하고 병해충 발생 시기를 잘 맞춰 친환경 제제를 살포했다. 농약이나 제초제와는 달리 친환경 제제는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

병해충이 발생하고 난 뒤 살포하면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논을 둘러보는 일이 필수였다.

혹시라도 다른 논에서 뿌린 농약이 바람을 타고 자신의 논으로 날아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마을사람들에게 농약을 적게 쳐 달라고 사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여름이면 3~4차례에 걸쳐 논둑에 자라난 풀을 베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남들은 손쉽게 제초제를 살포하면 그만이었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친환경 재배 첫해 무더위와 싸워가며 논일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 김 이장의 논에서 자란 벼는 다른 논의 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을주민들이 놀라워할 정도였다.

첫 수확 날. 가마니에 가득 담긴 쌀을 보며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확량도 많았고, 미질도 월등히 좋았다. 우려를 보냈던 마을주민들의 눈빛에 부러움의 기운이 역력했다.

도정 후 까다롭기로 소문난 농약 잔류량 검사를 통과하며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김 이장의 열정과 노력이 보답 받는 순간이었다.

"5년 전에는 친환경 무농약 재배를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5명의 동료가 생겼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모든 마을주민들이 함께 무농약 재배를 했으면 하지만, 어르신들이 나이가 많아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습니다. 무농약 재배를 하는 6명 가운데 제가 제일 어린 것만 봐도 농촌의 현실을 알 수 있지요. 아무튼 무농약 재배는 농사꾼이 걸어가야 할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더 노력해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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