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기]밤 10시 퇴근해 새벽2시까지 '열공'…주경야독

"배 떠난다. 아가야, 언능 안 타고 뭐하고 있노~."

양손 가득 장을 한가득 봐오신 어르신이 빨리 배에 오르라 호통을 치신다. 지난 8일 오후 2시. 장목면 시방리 선착장에는 이수도로 가기 위한 작은 배 한 척이 천천히 뭍을 떠나려 하고 있다.

"어르신 잠시만요, 아직 우편 집배원님 안오셨는데 그냥 떠나면 안됩니더~."

떠나려는 배를 용케 잡아두고 마을 저 너머를 보니 폴폴거리며 오토바이 한 대가 바람처럼 항구로 다가온다. 강동열(46)씨다. 일주일에 4번씩 이수도에 우편물을 전달해 주는 소식 전령사가 오늘은 조금 지각을 했다.

"언능 가입시다. 어르신 약 지으셨나 보네예~."

배 안에 자리를 잡자마다 강동열씨는 이수도 주민들과 자연스레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10여명의 어르신들이 강씨를 보자마자 '우리집엔 아무것도 안왔나' 하시며 우편물을 찾았다. 귀신같은 강동열씨, 그 많은 우편물들 사이로 어르신 개개인의 우편물을 손살같이 찾아 건네드린다.

15분쯤 배가 달리자 이수도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배를 정박하니 강씨는 어르신들의 짐을 하나둘씩 내려드리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어부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수도에 들어온지는 한 2년쯤 됐지예. 원래 장목 사람이니까 고향 소식 전한단 마음으로 하고 있슴니더."

강동열씨는 거제 안에서 부속섬으로 직접 우편물을 배달하는 유일한 집배원이다. 어느 섬엔 다리가 놓이면서, 어느 섬엔 마을공동우편함이 생기면서 집배원이 가가호호 직접 배달하는 섬은 이젠 이수도가 유일하다.

오늘 강씨가 배달해야 할 우편물은 총 60여개. 골목길 여기저기를 제 집처럼 누비며 능숙하게 우편물을 배달한다. 어느 마당에서 산칡을 손질하던 한 어르신이 즉석에서 슥슥 갈라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간식거리를 오물거리며 30여분쯤 함께 우편물을 돌리고 나니 면으로 들어가는 배가 뜰 시각까지 짬이 난다. 마을 이장님의 배 위에 앉아 강씨가 이런 저런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눈 안좋으신 어르신들이 아들편지 읽어달라 말씀하시면 마루터기에 앉아 읽어드리곤 했었는데…. 요새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짬이 안나네예"

지난 1997년 우편집배원 일을 시작했으니 강씨도 벌써 17년차 베테랑 집배원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6시까지 집배를 하고나면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분류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한다. 밤 10시가 넘어야 하루 업무가 끝난다고 한다.

"인력은 부대끼는데 일은 몇배로 늘었습니더. 예전에는 365봉사단이라고, 독거 노인들을 찾아가서 나무도 해주고 부엌도 고쳐드리곤 했는데… 업무가 과중되다 보니 좀처럼 시간이 안되니 그게 참 아쉽습니더."

힘들다고 하면서도 취재 내내 강씨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우편집배원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일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상 전부가 보람된 일인데 새삼스레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꺼."

생색내기용 '연중행사'에 찌들다시피 한 보통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대답이다.

바쁜 와중에도 강동열씨는 3년전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 매일 10시에 퇴근해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다 잠든다니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실천하는 직장인이자 대학생이다.

"항상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지예. 하지만 열심히 일 하는데 시민들이 '어차피 네 일 아니냐'고 말할 때는 조금 섭섭해 질 때도 있어요. 우리 집배원들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 마음을 시민들이 조금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취재가 끝날 무렵 한 뱃사람이 다가와 개인 배를 대주며 뭍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을 건넨다.

그의 배로 바람처럼 달려가 뭍에 당도하자 강씨는 훈훈하면서도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강씨가 탄 오토바이가 멀어져 간다. 신문에 소개될 것이라고 하니 예쁜 넥타이까지 챙겨 메고 온 그의 순박함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