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과 함께 한 500여년 전통, 거제 고유의 문화유산

1975년 무형문화재 지정됐으나 행정은 무관심·무지원으로 일관

임진왜란과 함께 태동해 500여년을 이어온 거제 고유의 문화유산 ‘거제칠진농악’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으면서도 시는 그간 철저한 무관심과 무지원으로 일관해 온 것으로도 드러났다.

‘문화불모지 거제’라는 오명이 그냥 생긴게 아니며 그 이면에는 고유의 문화유산에 대한 행정의 안이한 인식이 크게 똬리를 틀고 있음이 확인된 것.

거제칠진농악은 1470년 만들어진 지역 농악으로 임진왜란 때와서는 거제의 칠진(옥포진, 구조라진, 율포진, 동영진, 가배량진, 지세포진, 장목진)에서 왜군에게는 아군의 진영이 웅장해 보이도록 하고, 아군에게는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전술적으로 시연했던 특유의 토속 농악이자 군악으로 시작됐다. 거제칠진농악은 그 역사적 전통성과 기능성, 지역적 고유성을 인정받아 지난 1975년 거제군 시절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러나 거제시에는 현재 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자료 하나 보관돼 있지 않고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발간한 거제시지에 관련 기록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고 김관석옹, 정옥식옹 등 기능보유자들 중심으로 사비를 털어가며 근근히 외로운 맥 잇기를 해 온 것이 전부였다. 행정의 지원은 아예 기대난망이었고 당연히 연습할 공간, 재연의 기회, 역사적, 문화적 재조명의 기회가 차단돼 왔다.

칠진농악 기능보유자로 어렵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거제칠진농악보존회 정옥식 회장(68)은 “거제칠진농악만이 갖는 자랑스런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수관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재를 털어 각 학교, 주민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겨우 연습장을 구해 연습하고 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거제칠진농악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정회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지난해 말 ‘거제칠진농악보존회’를  결성하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큰 역부족을 느끼고 있다.  .
보존회 유재철 감사는 “인근 통영시, 고성군 등이 오광대를 비롯한 다양한 토속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이를 전통 문화상품으로 집대성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부럽다. 전수관도 다 갖추고 있다. 거제의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고 말했다.

웬만한 단체들도 다 지원받는 행정의 지원금 조차 이제껏 한 푼 받지 못하고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시나브로 움츠려져 온 게 ‘거제 칠진농악’의 현실이었던 셈이다.

지역 문화계 한 인사는 “칠진농악에는 이순신장군, 옥포대첩, 거제7진 등 임진왜란의 역사가 고스란이 묻어 있다. 거제에서 태동한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어쩌다 이런 현실에까지 처해졌는지 안타깝다. 시의 책임이 크다. 지금이라도 맥을 있게 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 재조명 및 집대성을 통해 통영시처럼 문화상품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거제칠진농악은 군령을 뜻하는 영(令)을 새긴 깃발 2개와 꽹과리 2, 징 2, 그리고 장고 북 소고가 짝을 이뤄 구성되며 꿩 포수와 무용수도 포함된다.

칠진농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어우러진다. △원 돌기(농악을 치며 입장하여 일반 농악처럼 좌우 원을 그리며 돈다)와 △멍석몰기 및 풀기(상쇠를 따라 달팽이 모양을 그리며 몰아 들어갔다가 반대로 원을 푼다)로 시작된다.

이어 △양편 가르기(짝수로 구성된 악기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양편으로 나눠 군령전달을 하고 나면 군령기를 앞세우고 한 팀으로 합쳐져서 원을 그리며 행진한다)로 나아가고 △마무리하는 의식(행진하던 농악꾼들이 가락을 멈추고 ‘헤이소, 헤이소’ 라고 하면, 구경꾼들도 ‘헤이소’라고 한다)으로 이어진다. △악기끼리 놀기와 퇴장(군령기를 앞세우고 큰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돌던 농악대가 악기를 멈추고 구경꾼을 향하여 돌아서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는 퇴장하는 것으로 끝난다)으로 그 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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