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정, 흥정과 덤 매력이 넘치는 거제 5일장
온갖 사람들과 물건들의 냄새를 느낄 수 있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정겨운 곳.
구경하기에 전혀 불편이 없고 흥정과 덤의 매력이 존재하는 곳.
장날은 그런 모든 것들이 모여 지난한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제 5일장의 풍경을 담았다.

싱싱하고 값싼 물건에다 살가운 정은 ‘덤’

거제장은 4일과 9일 장이 서는 5일장이다. 평소에는 한가롭기만 하던 장터는 장이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물건을 사라고 소리치는 상인들, 조금만 깎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들, 그리고 덤을 후하게 주었다고 뒷짐을 지고 웃음 날리는 아저씨. 이런 모습들이 바로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 내음 나는 풍경이다.

지난 4일 찾은 거제장터.

“나오셨십니꺼.”
“온냐, 마이 팔았나?”

상인과 손님 간에 살가운 안부인사가 오간다. 시장 한 켠에 자리한 방앗간은 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하다. 질척하게 물이 흐르는 난전에서는 힘이 넘치는 꽃게가 박스 넘어 탈출을 시도한다.

제철을 맞은 굴이 손님을 불러 모으고, 오색빛깔 과일들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난전을 벌이며 손님맞이에 한창인 상인들의 모습이 분주하기만 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가져 갈 물건을 고르느라 손님들의 발걸음도 바쁘다.

5일장엔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싱싱한 해산물과 과일 햇곡식 채소는 기본이다. 어제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무 오이 시금치 상추를 비롯해 강아지며 새끼 토끼까지. 모두 직접 가져온 상품들이다.

당연히 생산자 직거래일 수밖에 없다. 많지도 않다. 기껏해야 고무 대야 한두 개 분량으로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싸온 물건들이다.

“콩나물 한 움큼만 더 주라.”
“아이고 성님, 억수로 마이 넣은 거 안보입니꺼?”

기껏해야 몇 그램의 차이일 테지만,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에겐 몇 킬로그램의 무게로 다가온다. 조금 더 넣어주는 상인의 얼굴엔 싫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콩나물 봉지를 받아 든 할머니의 얼굴에 아주 살짝 웃음이 피어난다. 정해진 양만을 파는 대형마트에선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김장철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 듯 장터엔 배추와 무가 즐비하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배추잎사귀를 들치며 좀 더 싱싱한 것들을 추려내느라 여념이 없다. 배추를 실어온 상인은 “이보다 더 좋은 배추 있으면 공짜로 다 가져가도 좋다”며 엄포를 놓는다. 상인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배추를 고르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진다.

난전에 자리 잡은 할머니 상인들. 아침을 거르고 왔는지 가래떡을 먹으며 지나가는 손님들을 바라다 본다. 이웃 생선가게 아주머니도 양은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시장 곳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로 배를 채우는 상인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친구야, 한잔 하러 안 가나?”
“나는 밑에서 묵다 왔는데, 그라모 같이 가자.”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대포집을 찾아 휘적휘적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아직 11시도 안된 시각이지만 벌써 몇 잔 걸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다.  꼬부랑 할머니부터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새색시까지. 거제 장날이 품은 사람들은 다양하기만 하다.

인간적 거래가 최우선, 찾는 이 적어져 아쉬워

장날에는 좋은 포장, 대량판매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래가 우선. 채소며 과일을 한가득 쌓아놓은 매장보다, 앉은 자리에다 빙 둘러 놓은 여 나무 소쿠리의 것들이 더 잘 팔린다.

다른 물건들도 매 한 가지다. 낡아서 모서리가 끊어지고 다듬어진 나무판 위에 생선을 늘어놔도 손님이 몰린다. 작은 고무대야에 담긴 물고기들이며 미더덕 고동 딱새 베도라치 등이 난전을 가득 채운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과 어묵에 시선이 고정된다. 결국 엄마가 사주는 붕어빵을 손에 쥐고서야 가게 앞을 지난다.

전국에서 온 장꾼도 흥겨운 기운을 돋운다. 온갖 칼을 실은 트럭에다, 옷가지를 늘어놓은 상인, 이불이며 카펫을 파는 아저씨, 각양각색의 신발을 펴 놓은 아줌마까지.

이들이 풀어내는 맛깔스런 입담에 장날이 더욱 흥겨워 진다. 한 장에 3천원밖에 안 하는 남방과 티셔츠는 4장을 사면 만원에 준다. 재래시장의 맛은 ‘깎는 것’과 ‘덤’. 저렴한 가격에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리는 마술을 경험할 수 있다.

거제장을 처음 찾았다는 신영희씨(여·42·옥포동)는 “먹거리도 많고, 구경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 장터의 활기찬 기운이 너무 좋다”며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 장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즐거워한다.

장터에서만 30년 넘게 장사 일을 해오고 있다는 김부연씨(여·62·거제면 동상리)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며 “여름에는 콩국과 국물김치를 주로 팔고 겨울에는 굴이며 마늘, 팥죽을 판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10여년 전부터 장터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 아쉽다는 김씨. 이제는 장날에만 난전을 편다고 한다. “그래도 이 일로 자식들 모두 키워 결혼도 시켰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장터를 지나는 사람들의 손이 검은 비닐봉지와 장바구니로 가득하다. 얼굴 한가득 주름 가득한 어르신들이 버스승강장으로 몰린다. 그렇게 거제 5일장은 또 한번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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