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남편 병수발 헌신 이복점씨

“지난 20여년 세월동안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또 살아줘서 고맙기도 했지요.”

지난 1985년 7월, 결혼 3년차에 접어든 부부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위궤양성출혈로 갑자기 쓰러진 남편, 더이상 걸을 수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된 남편의 팔과 다리가 되기 위해 그녀는 20여년 긴 세월 동안 단칸방에서 두 딸과 함께 남편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신혼의 꿈도 잠시, 병상에 누운 남편의 병수발은 물론 자녀의 훈육을 위해 궂은일 마다 않았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그녀지만 그녀는 남편과 두 딸에게 불평은커녕 그들이 있어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시대 진정한 아내 그리고 어머니인 그녀는 하청면의 열녀로 소문난 이복점(51)씨다.

세월은 흘러 그녀의 남편(신용주·58)이 쓰러질 당시 2살과 갓 태어난 딸은 어느새 어엿한 숙녀로 성장했다. 특히 남편이 몸져누웠을 무렵 돌도 지나지 않았던 작은 딸은 지난 11일 결혼식을 올리며 주위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녀의 둘째딸 신은정(25)씨는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결혼식에 참석 해 줄 것을 소원했다. 신부가 결혼식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일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평생 한번 있는 결혼식에 부끄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결혼식참가를 마다했다.

20여년 간 병상에서 지낸 탓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딸이 커가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자신이 부끄럽고 또 미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정씨는 아버지에게 “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제일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빠가 없는 결혼식은 의미가 없다”며 회사 일도 제쳐두고 꼬박 보름을 애원했고 결국 그녀의 남편은 결혼식 당일 사위가 미는 휠체어에 의지해 딸의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게 됐다.

딸에게 미안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의 병수발을 하느라 제대로 된 뒷바라지 한번 못해준 딸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이 세상 어떤 것과 바꿀 수 없이 기쁨이지만 그래서 더 미안하고 슬프다”고 말했다.

은정씨의 결혼식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가족친지들의 눈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애써 참으려는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결혼식에 앞서 “그동안 짧은 외출이나 병원진료에도 힘겨워 하면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비를 잘 넘겨준 남편이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도 그녀의 남편이 회복되리라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포기하기는커녕 두 딸을 남보란 듯이 키워냈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적극 참여하며 마을 사람들과 집안사람들의 귀감이 됐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 전 대통령이 당선  당시 그녀의 형편도 곧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대통령께 누를 끼치지 않으려 어떠한 도움도 원하지 않았고 그녀의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녀가 김 전 대통령의 임기동안 누린 혜택이라고는 청와대에 몇 번 초청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대통령의 사촌집안 이라는 남다른 자부심과 함께 더욱 열심히 살기위해 더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상태로는 장애등급 판정을 받고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실정 이지만 만만치 않은 장애등급진단비에 장애인 등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두 딸이 출가를 하기 전에는 생활보호대상자의 자격도 얻지 못한다.

다행히 그녀는 몇 년 전 지인의 도움으로 20여년 동안 살던 연초면 연사리 단칸방에서 벗어나 남편의 고향인 하청면 연립주택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이전 보다 윤택한 삶은 물론 남편의 병세도 많이 좋아지는 행운을 얻었다.

그녀는 “평생 수고로운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랜 병상생활에 누구하나의 도움없이 살아왔는데 다행히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남편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앞으로 큰딸(신정숙·27)이 좋은 사람만나 시집가고 나면 이웃에게  모범적이고   베풀 수 있는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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