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

주간거제신문 창간소식지 2호 - 1989년 8월25일자 2면

[창간 취지문]

오늘 우리는 이 땅 거제도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간 거제신문’의 창간작업입니다.

우리거제는 지난날의 오랜 침체와 은둔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지방시대를 눈앞에 두고 조선공업, 수산양식업, 관광산업 등으로 비약적인 지역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지역개발에 따른 제반사회 문제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지역의 정신적 의식적 발전은 어려웠고, 문화전통은 사라지고, 지역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고 서로의 이해관계대립으로 때로는 지역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균형있는 지역발전과 올바른 지역여론을 형성하여 다가올 지방자치제에 대비한 지역민주화의 기초를 닦고 지역주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우리들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바로 ‘주간거제신문’의 창간이며, 누군가에 의해 꼭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또한 지방사람이기에 당해야 하는 아픔, 특히 언론으로부터 소외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들 아픈 삶의 경험이 너무도 당연하게 ‘주간거제신문’의 창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이웃사정을 알고 지방의 소외와 아픔을 덜어보자는 것입니다.

아직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우리거제의 신문 ‘주간거제신문’이 지역주민 모두가 다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명실상부한 거제신문이 되어 찬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1989년 8월 19일

주간거제신문 창간준비위원회

1989년 10월6일자 – 창간사

해금강 사자바위의 천년송이 파도에 깎이는 해안의 바위를 지켜보듯 거제의 땅과 바다를 지켜갈,
거제신문이 창간되었다는 가슴 벅찬 감격을 16만 거제도민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역 여러분들의 격려와 충고 속에 창간의 산고를 겪어온지 10개월여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창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우리거제도 이제 신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거제는 많은 변화를 겪어가는 도중에 있습니다.80년대가 거제에 있어 대우·삼성조선의 유치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자연이 훼손되는 진통을 겪었던 시기라면 앞으로 오는 90년대는 주민이 직접 시·군 행정에 주인으로 참여하는 지방자치시대로의 변화를 요구받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지방차치·주민자치가 시·군의원 뽑고, 지방의회를 구성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이 내는 세금은 어떻게 쓰여지나, 행정처리에 문제점은 없는가 하는 것들을 감독하고, 의견을 개진해가는
말 그대로 ‘지역살림을 지역민이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라 할 때 지역민이 바르고 생산적인 정보를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거제신문의 창간은 하나의 시대적 요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거제신문은 지역문화발전의 일익을 담당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문화공간이 부족하고 알찬 문화행사를 접하기 힘든 우리거제에 당장 큰 문화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유치하는 노력은 물론, 지역 내의 문학·미술·사진 등 각 문화·예술단체동호인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평가받고, 논쟁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는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발전과 지역문화 창달의 사명을 안고 출범하는 거제신문은 지역의 화합과 단결을 가져올 수 있는 정론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유언비어나 대화의 단절로 생긴 오해나 불신의 벽을 정론으로 풀고 지역갈등의 원인에 대한 건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때에만 신문으로서 제구실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거제신문은 창간을 맞아 끊임없는 탐구와 발로 뛰는 노력으로 지역민의 생활의 한부분이 되고자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간 10개월 넘게 새 생명이 태어날 산고를 겪고 창간되는 거제신문이 우리 거제인의 입과 귀로서 지역사회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989년 10월 6일

발행인 김경언

1998년 12월3일 – 법인체제 출범 김삼용 대표이사 취임사

정통지역신문, 거제사회에 봉사할 터
백마디 말보다 한가지 작은 실천으로

17만 거제시민여러분. 시민여러분의 앞날에 항상 복된 행운 함께하실 것을, 충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볼초 소생이 이번에 새로 탄생한 ‘주식회시 거제신문’의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되어, 우선 지면으로나마 인사 올립니다. 여러모로 미흡한 제가 초대(주)거제신문의 대표이사라는 막중한 책무에 그 사명과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분투 노력, 거제지역 언론창달에 헌신하겠습니다.

무릇 지역신문이란, 지역의 여론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우해 비판적 기능과 선도적 구실을 도맡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시민여러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거제시는 다른지역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있고, 거제인의 특유한 정서가 깃 들여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방화시대 맞아, 이런 복합적 특성을 안고 있는 우리고장에서 지역신문이 도맡아야할 구실은 참으로 중차대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거제시는 결코 배타적이어서 안 될 정치적 상황이 잠재돼 있고, 1세기에도 드문 대통령을 배출한 성지(聖地)로써, 자긍심을 고취해야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또한 우리 거제시는 대우·삼성 등 세계적 조선공단의 요람으로써 농·공단지를 육성 개발하는 공업화 전략의 필요성이 절실한 반면, 천혜의 자연경관을 살려서, 국제적 해양관광도시로 비약, 발전시켜야 할 환경의 양면성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거제시는 문화적, 그리고 정서적 측면에서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이주민과 토착민의 정서를 하나로 뭉쳐 고양해야할 과제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이제 새로 탄생된 ‘주식회사 거제신문’이 지향해야할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거제인의 정서를 함양하고 진작시켜, 21세기를 향한 자랑스런 거제인의 정신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를 위해 (주)거제신문은 새로운 탄생을 계기로 ‘새로운 정론’, ‘새로운 경영’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시민이 대접받고, 잘사는 거제상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또 보다 새로운 생활정보와 뉴스 등에 초점을 맞춰 거제시의 발전상을 낱낱이 보도하여 이를 높이 평가, 선양할 것을 약속합니다.

반면에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사례를 발본색원하여, 비판할 것이며 구태의연하고 비생산적인 관행은 결코 용납치 않을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새로 태어난 ‘(주)거제신문’은 지역 언론사의 난립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선의의 경쟁은 피하지 않겠지만, 특히 IMF 삭풍 속에 무모한 경쟁은 결코 거제지역발전에 불이익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천애하는 17만 거제시민 여러분! 오늘 이 시점에서 꼭 몇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주)거제신문은 17만 거제시민을 모두 주주로 모신다는 자세 △거제의 언론문화는 ‘주식회사 거제신문’ 하나로 맡은바 소임을 다할 각오이며 △양질의 신문을 제작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백마디 말보다 한가지의 작은 실천으로 ‘(주)거제신문’은 시민과 함께하는 정통지역 신문을 만들어,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시민으로서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봉사자로 거듭나 바른신문, 정확한 신문, 늘푸른 신문이 되며, 지역언론의 소명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부디 시민 여러분의 각 가정에 행운이 깃드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만사형통하실 것을 기원드립니다.

김삼용 (주)거제신문 대표이사

2006년 2월8일 창간700호 기념호

“巨濟의 미래를 위한 충실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거제신문을 사랑해주신 애독자와 거제시민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17년간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에 ‘지령 700호’라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거제신문의 오늘이 있다는 것을 믿으의심치 않습니다. 거제신문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여러분의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뜻깊은 지령 700호 발행을 맞아 시민을 더욱 소중히 모시는 신문, 시민의 어려움을 함께 하는 신문, 거제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지혜로운 신문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머리로만 살지않고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일하는 지역분위기 조성에 앞장서며, 바위처럼 말없이 침묵하면서 향기로 모든 이를 감화시키는 들꽃같은 자세, 바깥을 향해 외치는 입 보다는 밖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우리의 자세를 견지(堅持)하겠습니다.

남의 아픔의 깊이를 헤아리고 혼자서 흘리는 눈물의 원인을 찾아주는 우리의 역할, 또한 세상이 따뜻해야 자신도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우리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겠습니다.

시민의 알권리 충족과 보도기관으로서 알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 신바람 나는 우리시대를 형성해 나아가며 거제발전의 동참지로서 그 사명과 긍지와 책임감을 함께 나눠가지겠습니다.

한 해가 지난 다음에야 그 해가 어떠했는가를 평가하듯 우리의 지난 17년도 이제야 시민평가를 받으려 합니다. 모진 채찍과 아낌없는 격려를 부탁하며 거제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대합니다.

2006년 2월 8일

거제신문 사장 김동성

[발행인 인사] 2012년 6월4일 지령1000호 기념

지령 1,000호 발행에 즈음하여

존경하는 애독자 여러분, 그리고 24만 거제시민 여러분!

언론 자유화와 함께 1989년 태생한 거제신문이 여러분의 사랑과 성원 속에서 지령 1,000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기쁨이 있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격동기에 지역신문을 창간한다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경영난으로 인한 자본의 유혹과 정치적 굴곡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지령 1,000호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은 힘든 순간마다 든든한 힘이 되어주신 애독자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한 거제신문의 역사적인 1,000호 발간은 자못 마음이 설렙니다.

그동안 거제신문은 지난 2008년 이후 5년 연속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됐고,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로부터 2년 연속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됐습니다. 또 독자 여러분들이 보다 편하게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베를리너 판형으로 전환함과 아울러, 소통과 참여의 활성화를 위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구축 등 지속적인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거제신문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시도할 것입니다. 이른바 ‘명품 신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동반자로서, 그 동안 우리 거제와 함께 해 온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정론불휘의 꺾이지 않는 자존심으로 시민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이 되고, 거제신문 만의 아우라(Aura)를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거제 최초의 지역신문, 거제 최대의 발행부수, 거제 최고의 지역언론으로서 애독자와 거제시민 여러분께서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신문으로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끝으로 지령 1,000호가 있기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어진 책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여 주신 임직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숱한 고난의 길을 함께 해 주셨던 전직 임직원 여러분들과 함께 지령 1000호 발행을 자축(自祝)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거제신문 사장 박행용

[창간26년에 부쳐]거제인의 자존심

작열하는 여름땡볕을 잠재우는
태풍이 남해안을 강타하던 그 여름.
해금강 천년송을 뒤덮은 해일이
미친 듯이 암벽을 때리던 칠월.
시커먼 먹구름을 토해내는
여름소나기가 거제도를
치때리던 스물 하루.
작열하는 폭염 속에 거제인이 모였다.
해일같은 파도 앞에 거제인은 깃발을 들었다.
소낙비 맞으면서도 거제인은 함성을 질렀다.
거제신문 창간이라는 명제 아래 거제인은 모였고 깃발을 들었다.
대한민국 두 번째 창간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의 불꽃으로 함성과 깃발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지역신문이라는 한계의 쇠사슬에 묶여 그날의 불꽃은 자본과 인력난 그리고 언론가치관의 혼돈 속에 해금강 천년송처럼 생명만 유지할 뿐 아무런 기상이 없었다.
이제 거제인들이 다시 불꽃을 피우고자 한다.
거제인들의 자존심의 깃발을 들고 그들이 가르쳐준 함성을 질러보고자 한다. 그래서 26년 전 7월 여름날 그 뜨거운 거제인들의 영광을 돌려주고자 한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거제의 발전을 먼저 생각하고, 양심이 있고 상식이 통하는 거제인을 사랑하는 거제신문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여름 땡볕을 잠재우는 태풍처럼 파도가 되고 소낙비가 되어 거짓과 위선, 불의와 야합을 넘는 함성이 되어 거제인들과 함께하는 참 언론이고 싶다.
이제 거제신문은 거제 미래의 깃발을 앞세우고 나가는 신문이고 싶다.

거제인들에게 사랑받는 거제신문,
거제인이 자랑하는 거제신문,
거제인들의 자존심으로 거제신문이 다시 살아나고 싶다.

2014년 7월 어느날 거제신문 발행인 김석용

창간 28년, 역사와 전통으로 거제의 자존심이 되겠습니다.

희생과 헌신 속 거제신문 창간 28년을 맞기까지

거제신문이 민주화의 열기 속에 공보처 장관의 정기간행물 등록증을 받은 지 28년. 수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거제신문을 전국최고의 지역주간지 반열에 올려놓은 故 巨巖 김석용 전 발행인 타계로 창간 28년을 맞는 거제신문의 감회는 남다르다. 창간 28년을 맞은 오늘, 故 巨巖 김석용 전 발행인의 거제신문 인수와 법인전환 과정, 그리고 고인의 경영철학을 현 거제신문 김동성 대표이사를 통해 회고해 본다.

편집자 주

20년 전 5억원,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지금은 40~50억원

주간거제신문을 故 巨巖 김석용 전 발행인이 인수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이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외환위기 무렵이다.

1998년 주간 거제신문 전 직원들이 당시 발행인 겸 사장에 대한 임금체불 고발장을 들고 지역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들은 고인에게 “주간 거제신문을 인수하지 않으면 사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겠다”라고 말하며 신문사 인수를 권유했다.

당시 임금체불액은 9000여만원. 이에 고인은 신문사 직원들의 생계 해결을 최우선으로 주간 거제신문을 인수하게 됐다. 20여년 전 당시 주간 거제신문 인수금액은 2억3000만원이었고 초기 투자금액도 8000만원에 달했다. 인수 후 2년 동안 투자한 금액 2억원을 더하면 대략 5억원이라는 큰 돈이 투입된 것이다.
이 돈을 지역 부동산에 투자했더라면 현재의 시세를 고려할 때 40~50억원정도는 충분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1998년 당시 주간 거제신문의 사주였던 지역 건설사 대표 A씨는 사업실패로 신문사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한 상태였다. 신문사 자구노력을 강구하던 발행인 겸 사장 B씨는 당시 거제시민신문과 거제신문을 통합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두 신문사간 기득권 다툼으로 창립 주주총회는 주주 출자수가 아닌 총회 참석자 수로 의결하는 웃지 못할 행태를 보였고 결국 이 창립총회는 무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문사 직원들은 9000만원에 달하는 체불임금 때문에 노동부 고발을 검토 중이었고, B사장은 직원 임금체불 우선 변제를 조건으로 故 김석용 전 발행인과 주간 거제신문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1998년 11월23일 법인설립…특수주간지에서 일반주간지로 전환

이전까지 주간 거제신문은 특수 주간지로 등록돼 있었다. 이 때문에 정치 및 시사관련 사항을 보도하지 못하며 단지 장승포시 및 거제군의 시·군정을 해설·홍보하고 지역 내 각종 소식과 생활 정보를 수록해 거제 일원에 보급하는 제한된 신문이었다.

이에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1998년 11월23일 법인설립과 일반 주간지 전환을 마무리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제공하고 각종 생활정보를 수록해 시민의 알 권리 및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명실상부한 지역 언론의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또 전국 일원에 거제신문이 보급되면서 새로운 창간을 이룩한 거제신문의 위상 제고는 물론 거제를 전국에 알리는 첨병으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

거제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희생자들, 이젠 화해와 용서를

1998년 거제신문 인수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인수 대금은 2억3000만원이었는데 채권 금액은 6억원이 넘었다. 이 때문에 거제신문이 양도·양수 되고 난 뒤에도 전(前) 직원들이 광고비 수금을 하고 있었다. 인수대금의 잔금은 인맥이 있거나 당시 사장의 지인들 중 법적으로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였다. 채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채권 금액이 인수 대금을 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양수자에게 변제하라고 행패였다. 결국 법원에 공탁해 체불임금 일부는 해결됐지만 실제 신문사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건도 있었다.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당시 B사장의 음해에도 침묵한 채 대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친구도 어렵지 않았겠나”라며 이해했고, 신문사 인수 전 주간 거제신문 직원이면서 보증으로 채권인이었던 모씨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거제신문이 28년이라는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신문을 한다는 것은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세월 거제신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불신은 화해를 통해 모두 용서해라. 신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라고 한 고인의 말씀이 다시 한 번 귓가를 맴도는 오늘이다.

신문사 사주는 바뀌어도 기자는 바뀌지 않는다

거제신문이 옛 거제시보건소 2층으로 이사를 한 1998년. 그해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31일 거제신문 송년회 모임에서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거제신문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신문사 사주는 바뀌어도 기자는 바뀌지 않는다는 지난날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거제신문을 맡은 이상 거제신문이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립의 길을 찾아야 한다. 신문사에 시설투자는 해줄 수 있어도 인건비와 소모성 투자는 해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당시만 해도 지역신문 기자들은 자본을 가진 이를 잠깐 사주로 맞았다가 또 다른 자본주에게 사주를 넘겨주는 모습을 수차례 봐왔던 상황이었다. 기자는 그대로인 채 사주가 바뀌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회사 경영진과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기자는 사실상 전무한 시기였다.

편집권 독립은 철저히 지켜주고, 사업과는 철저하게 분리

혹자들은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이 신문사 편집권에 간섭하고 신문사를 자신의 사업 방패막이로 이용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을 한다. 그러나 거제신문 종사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단 한 번도 편집권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거제신문이 거제의 공기(公器)로서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기자들에게 용기를 준 분이셨다.

또 신문사 사주로서 개인사업과 신문사를 철저하게 분리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석산사업과 신문사를 같이 운영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고인의 신문사 인수는 석산사업을 마무리한 뒤 이뤄진 일이었다.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헛소문이 나돌아도 한 번도 대꾸하거나 변명하는 일이 없으셨다. 항상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씀을 아껴서 하시는 분이셨다.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의 신문경영철학 토대 위에

거제신문은 건전한 기업적 토대 위에 자유언론과 거제시민의 목탁을 자임하고 새로운 경영기법과 경영합리화에 힘써 왔다.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해방 전 태어나 4살 때인 1946년 거제에서 창궐한 콜레라로 부모님을 모두 잃으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한국전쟁으로 제산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제산마을을 떠나 어려운 청년시절을 보냈지만 자수성가로 성공할 정도로 근면·성실한 분이셨다.

고인은 거제신문이 진보진영까지 포용하는 열린 보수를 지향하는 신문이기를 강조하셨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영(榮)과 욕(辱)은 교차하기 마련이지만, 故 김석용 전 발행인은 거제지역에서 의리 있는 사람, 밥값 잘 내는 사람, 입이 무거운 사람,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오셨다.

“창간 28년을 맞으며 지난 20년간 거제신문 사주와 발행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 오신 고인을 떠나보내는 이 시점에서 외압에 굴하지 않고, 텃세가 아닌 거제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거제신문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또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언론의 소명에 충실하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면서 끊임없는 혁신으로 거제신문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로 다시 한 번 거제신문 임직원들과 굳건한 각오를 다집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각오로 거제를 지켜가겠습니다. 거제시민 여러분, 거제신문을 지켜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