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포로수용소 석방포로들의 삶과 문학 ③
거제도포로수용소 석방포로들의 삶과 문학 ③
  • 거제신문
  • 승인 200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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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그러한 가운데 남한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윤애와의 사랑에도 불안을 느끼던 명준은 뚜렷한 확신도 없이 인천에서 배를 빌려 북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그곳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인민들의 광장이 아니라, 인민과 혁명을 팔아 권력을 잡아 인민의 위에 군림하는 당(黨)의 권위와 밀실이었다.

북한의 노동신문 편집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명준은 해방되던 그해 월북하여 북한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아버지가 살림을 차린 것을 보고는 혁명을 팔아 이상과 현실을 바꾸어 살아가는 죄를 짓고 있다며 격렬히 비난한 뒤 아버지의 집을 뛰쳐나온다.

명준은 노동신문사도 사직하고 노동판에 뛰어들었다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그 곳에서 국립극단 발레리나인 북한의 젊은 여성인 은혜를 만난다. 결국 남북 어디에서도 인간끼리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은 북의 여자인 은혜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양의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였던 은혜는 명준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소련으로 가고, 곧 이어 6·25전쟁이 발발하자 명준은 정치보위부원으로 전투에 참여한다.

낙동강 전투에서 명준은 그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간호병으로 자원해 전선에 내려온 은혜와 재회하지만, 그녀는 명준의 아이를 임신한 채 유엔군의 대대적인 공습에 의해 전사하고 명준마저 포로로 잡힌다.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교환 시 남과 북, 그리고 중립국 중 어느 곳이던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자 명준은 자신이 남과 북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중립국인 인도행을 선택한다.

명준은 타고르호를 타고 중립국으로 가는 도중 거제도포로수용소 출신의 다른 포로들과 섹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남녘에서 사귀었던 윤애를 생각하기도 한다.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갈보들이 드나든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어떤 사람들이 차지하는 건지 명준은 본 적이 없다. 스산한 수용소 살이에서 명준은 섹스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중략) 거제도 바닷가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에 수용소는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목까지 들이밀고 편히 눈을 뜬 슬리핑 백 속에 되살아오는 우상도 역시 이브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드나든다는 갈보들 얘기는 다른 세상 일 같았다. 사람 모양을 한 살을 안았대서 어떻게 될 외로움이 아니다. 스스로 몸을 얽어오던 그리운 사람들의 사무치는 마음이 그리웠다. 마음이 몸이었다. 그는 꿈속의 윤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윤애, 난 사랑했어. 방법이야 아무리 서툴렀을망정. 난 사랑했기 때문에 윤애를 버리고 도망한 거야.」

그런 한편 그는 북녘에서 사귄 은혜도 생각해본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석방포로였던 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한 가장 절실한 이유는 낙동강 전투 중 사망한 은혜의 죽음으로 자신을 지탱하게 한 마지막 돛대가 부러졌다는 절망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남쪽의 윤애와 북쪽의 은혜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이데올로기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나 은혜의 죽음으로 모든 게 허망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명준은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중립국 인도를 선택하고 인도로 가는 타고르 호에 승선하면서부터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시선이 있음을 의식하고 불안해하는데, 그것은 중립국으로 도피하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선원들에게는 뱃사람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의 상징적 지표라 알려져 있는 갈매기 두 마리가 인천 항구에서부터 남지나해를 지날 때까지 줄곧 배를 따라오는데, 명준은 큰 새와 꼬마 새가 은혜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딸이라 생각하여 가족이 있다고 생각한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상이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의 개략적인 줄거리이다. 이곳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이야기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먼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이야기의 흐름부터 살펴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젊은 철학도이다. 그가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감행하게 되는 가치 선택을 위한 지적 모험이 이 소설의 참주제와 연결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공부하며 이상을 키워나가지만, 아버지가 북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임이 판명되면서 경찰의 혹독한 취조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관념적인 상태에서만 의식하고 있던 남북의 분단과 이념적 갈등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대두되어 주인공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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