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

이처럼 이념의 반대편에 서있는 윤석규와 조양숙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이야기가 두 집단의 갈등의 내면을 깊이 엿볼 수 있는 허구적 장치다.

이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란 인민군 적색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를 탈출하던 중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입원한 뒤 얼마 후 퇴원하여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되어 반공포로의 감찰조장이면서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을 맡게 된 윤석규와 좌익공작원이자 야전병원 간호원으로 근무하는 조양숙의 비극적 사랑이 그것이다.

공산포로 조직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맞서기 위해 반공포로 조직 또한 잔인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짐승의 시간’ 속으로 빠져 들게 되자 ‘자기 회의’를 느끼는 윤석규의 내면적 갈등은 인민군 적색포로로 야전병원 간호원으로 근무하는 조양숙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더욱 심해졌고, 결국 조양숙을 만나기 위해 73수용소 철조망을 넘다가 초병에게 적발되어 사살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이념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죽음으로 자유를 획득하는 주요 인물에 최윤학이 있다. 그는 서울 출신 의용군 포로로 일찍이 사회주의 낙원 건설이라는 이상에 심취했던 인텔리 청년이다.

잔혹성과 카리스마로 포로집단을 좌지우지하는 극악한 공산포로인 진상용마저 최윤학에게 인간적 애정과 신뢰를 보이지만, 포로수용소의 극한 상황,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치욕스런 현실에 직면하자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로 자기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끊임없이 고뇌하고 절망한다.

최윤학은 포로 송환시 부상병포로로 거제도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 다음 고현 장평부두에서 LST함에 올라 고현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상념에 잠긴다.

「물 위에 반사된 햇빛이 실안개처럼 아련히 떠있는 먼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덧 눈물로 어지러워졌다. 포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들었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었다. ‘인간이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 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상념들 끝에 부상병 최윤학은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떠나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상의(上衣)의 포켓에 꽂고 온 노란 민들레꽃과 함께 바다로 떨어져 죽는다.

이 장면은 마치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 인도로 가는 도중 남지나해에서 자기의 아내와 딸이라고 생각되는 두 마리의 갈매기가 있는 바다로 투신 하는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다만 소설 「거제도」에서는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심취했던 인텔리 청년 최윤학이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느끼면서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바다에 투신하는 것이라면,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데올로기 문제보다는 더욱 본질적인 것이 가족 공동체임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상기 두 작품을 분단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남과 북의 이념적 갈등 해소의 한 방안을 손영목의 소설 「거제도」는 제시하지 못한 반면,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이념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복원이 더 앞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주인공들의 행동이 공통적임은 분명하다.

이밖에도 소설 「거제도」에서는 포로분류심사 과정과 갈등, 가족과 헤어진 김병수 부자(父子) 포로의 애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며 지옥인 포로들의 생활, 9·17폭동, 기탑경쟁(旗塔競爭), 거제도포로수용소 경비사령관 돗드 장군의 납치 사건, 포로교환 등이 소설 속에 직조됨으로써 작가 자신이 말하듯이 “한국전쟁 기록으로도 정리가 미흡한 거제도포로수용소 사건 전말을 종합적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거제도포로수용소 사건 전말을 종합적 총체적으로 집대성하려는 그러한 작가의 의욕 때문에 오히려 소설 구성에 있어서는 긴장감이 느슨해진 면이 있음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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