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창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유엔군과 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던 한국전쟁의 부산물로 거제에는 포로수용소가 생겨나게 된다.

거제도 고현지구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게 된 것은 해안에 접해있어 육지로부터 포로 이송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경비문제를 고려할 때 계룡산·옥녀봉·국사봉으로 둘러싸인 거제도의 중심부인 고현지구가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1950년 11월27일 거제도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1951년 6월말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육지에 있던 포로들이 이송 완료된다.

1950년 11월27일 거제도포로수용소를 확정한 유엔군사령부는 설치공사를 시작하여 도로의 개설과 장평비행장에 360만평의 농토와 임야를 징발하여 불도저로 밀어 구획을 정리하고 야전용 천막을 설치하였다.

이 고현지구는 신현읍 장평 고현 상동 문동 양정 수월의 6개 리와 인접한 연초면 연사리의 임전마을 그리고 포로공동묘지로 송정리 일부가 징발되었으며, 1951년 2월부터 6월 사이에 15만여명의 공산군 포로를 육지에서 LST로 고현항으로 수송하여 트럭으로 각 단위수용소에 배송시켰다.

각 단위 수용소에는 공산포로를 5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수용하였다.

즉 △고현·상동·문동리는 인민군 반공포로 △수월리(해명)는 중공군 포로 △수월리(주작골)는 여자포로 △양정·수월리는 인민군 친공포로 △고현·수월리는 남한 출신 의용군 등이 그것이다.<「거제시지」참조> 

이러한 거제도포로수용소를 중심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등장은 일찍이 장용학의 단편소설 「요한시집」(1955년)과 강용준의 문단 데뷔작인 단편소설「철조망」(1960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손영목의 ‘풍화’가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해방 이후 6·25 전쟁기까지의 거제도를 광범하게 다루었다면, 장용학의 소설「요한시집」과 강용준의 소설 「철조망」은 모더니즘적 기법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를 중점적으로 서사화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더니즘적 기법에 의한 의식의 연상과 상상의 자유를 구가하는 빈번한 관념성의 실험으로 인해 난해해진 까닭에 일반 독자들에게는 쉽게 접근되지 못하고 주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었다. 특히 장용학의 소설 「요한시집」의 경우에 그 일탈과 실험의 강도가 심한 편이다.

①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설의 모더니즘적 실험 - 장용학의 단편소설 「요한시집」

장용학은 1921년 함북 부령에서 출생하여 1947년에 월남, 1949년 연합신문에 단편 「희화(戱畵)」로 등단한 후 거제도포로수용소의 삶을 다룬 단편소설 「요한시집」<「현대문학」·1955.7>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 주된 이유는 이 작품이 한국전쟁과 같은 이데올로기전쟁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명제를 당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던 실존주의 사조의 영향 아래 서사화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포로수용소라는 특수상황을 배경으로 이념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자각과 자유 추구, 다시 말해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과 인간 존재의 진정한 자유에 대한 질문을 잘 이해하고 깊이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개인의 존재와 그 의미가 전쟁의 상황 속에서 사상, 인민, 계급과 같이 추상적이고 공허한 언어에 의해 훼손되어 버리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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