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의 철학가는 “진리란 일종 실재 모형이다”라고 주장한다.

벽상의 시계를 우리가 눈을 감고도 그의 모양을 상상 할 수 있음은 혹 일종모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심중에 일어나는 시계의 용처에 대한 관념도 모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모방함 인가?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도저히 모방이 있을 수 없는 많은 진리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실재와 부합된다’는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 진리란 모두 우리가 능히 소화 할 수 있고 능히 방증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허위의 관념만이 이와 같이 못 할 뿐이다 라고, 진리란  일종가설로 신비적 연구불변의 그것이 아니다. 실제로 증명 할 수 있는 동시에 시간공간을 따라 진화 변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네들은 고대의 전설 고인의 학설 사회의 풍속습관에 대하여 조금도 맹종할 필요사 없었다. 모든 것은 자기네의 의지 자기네의 지식에 비추어서 그의 가부를 판정하게 된 것이다.

남이야 무어라고 하였든지 좋다. 고대 사람이 무어라고 주장하였는지 우리가 그것에 복종하여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자기 자신이 실험하여 본 것이나 또는 실제로 증명 할 수 있는 것만 믿어야 한다는 것이 그네들의 근본 태도였다.

여기에 그네들은 과거사회에서 전하여 온 모든 것을 회의 하는 동시에 그보다 더 완미한 가설을 얻기 위하야 노력하고 연구 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고인의 몽상치도 못하는 여러가지 신발명을 하게되었다. 이렇게 그네들은 각 방면으로 전고미 회유의 대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서 그네들에게 이러한 태도가 산생되었는가? 이것은 위에도 잠깐 말 한바 있지만 과학의 영향을 받아서 성취된 것이다.

근세 서구사회가 과학가에서 얻은 제일 큰 선물은 그네들의 진실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예 부흥 이후도 점차 발전된 과학은 성견을 타파하고 객관적 실체를 중요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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