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출신 독립운동가인 양명(梁明) 선생이 제62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70여년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거제신문은 1920-1930년대 양명 선생이 투고한 글 가운데 수집한 개벽 3호(1925년)에 실린 ‘근세 구미문화의 근본태도’란 글로 재조명 해본다.
           

근세 구미문화의 근본태도란 무엇인가? 즉 진리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그네들의 진리에 대한 태도를 간단히 말하면 아래와 같다.

진리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일종가설에 지내지 못한다. ‘실제와 부합된다!’는 것은 큰 오해다. 상대적이오 절대적이 아니다. 진리란 사람이 만든 일종의 가설이다. 딸아서 사회의 진화, 인류지식의 정도여하로 시시각각이 진화변천되는 것이다. 결코 ‘천고여일’한 것은 아니다. 고대의 진리는 현대의 진리가 아니요 남의 진리는 나의 진리가 아니다. 시간공간의 여하로 변화무상하는 것이다.

진리란 시간과 공간을 따라 진화변천되는 일종가설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그것에 맹종하여야할 필요는 없다. 비단 고대의 그것에 맹종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현대의 그것이 대하여서라도 반드시 비평적 태도를 대하여야 할 것이다.

자기의 의지에 불합되는, 실제로 증명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하여는 개량적으로 회의할 것이다. 호의적 태도로 연구할 것이다. 그리하야 그것보다 더 완미한 가설을 었도록 노력할 것이다. 조금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이 세가지야 말로 그네들의 진리에 대한 근본태도로 근세구미문화를 산생케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과거 우리민중(우리뿐 아니다. 과거 동방민중은 모두 이러하였고 문예부흥 이전의 서양민중도 이러하였다)은 진리라 하면 일종 절대적이요 초인간적인 연구불변의 신비적 실제로 예상하여 섰다.

그것이 절대적이요 초인간적인 ‘천경지위’인 이상 그것에 무슨 과거의 진리, 현재의 진리, 남의 진리, 나의 진리라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현 사회의 모든 인류는 과거사회의 진리에 대하야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천년 전 중국사회의 진리(?)라는 유교사상을 가지고 와서 그대로 우리사회에 실시할려고 하였다. 공자가 무어라고 하였으면 그대로 맹종하였고 주희가 무어라고 주를 달았으면 그대로 절대복종 하였다.

조금도 회의할 수 없어고 조금도 개정할 수 없어다. 이러한 결과로 일종 맹종적 배타적이다. 기형적 문화를 산생하야 우리는 종내 문화상으로 파산되고 만것이다.

이와 반대로 근세 구미사상가들은 문예부흥 이후에 장족적으로 진보된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진리의 일종가설에 지내지 못함을 믿게 되었다.

특히 철학계의 신흥학파인 실험주의 철학자들은 진리의 신비성을 절대로 부인한다. ‘진리란 일종 실제로 응용 할 수 있는 동시에 노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함이 그네들의 주장이다. 이 학파철학의 진두미인 제임스의 조작 실험주의 중에 아래와 같은 일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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