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거제로 유배온 이교리의 귀양살이 묘사

‘거제에 도착한즉 진달래가 만발이더니 지금은 녹음이 우거지고 이른 매미의 찌르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게 되었다.

다행히 (거제)부사(府使)가 까다롭지 아니한 사람이라서 이교리는 요식으로 군색도 당하지 아니하고 또 초하루 보름의 점고(點考) 외에는 별로 간섭도 받지 아니하여 귀양살이로는 편하다면 편하나, 일천 일백리 머나먼 길에 서울 소식이 막히고 또 자기 앞에 오는 위험이 예측하기도 어려운 까닭에 때때로 궁금답답하여 긴 한숨을 짓는 것은 면치 못할 일이었다.’

이교리는 그(집주인) 말을 따라 힘없이 대답하고 마침 볼에 앉은 모기를 부채 안 쥔 왼손으로 때리면서

“지독하다.”
“흉악하지요. 여기 모기가 섬모기라도 고성(固城) 모기와 혼인을 아니한다오.”

말이 달리 돌기 시작하여 예전에 거제현령이 고성 가서 있었던 까닭에 고성 사람들이 지금까지 거제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일어서 나갔다.

간략한 이런 묘사들을 보면 거제의 진달래, 매미소리, 지독한 모기 이야기 등 자연환경적 서술과 함께 거제의 민심 그리고 서울소식을 들을 수 없는 이교리의 답답한 심정 등이 서술되어 있다.

이교리가 거제로 귀양온 후 서울에서는 본격적인 갑자사화의 피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연산군의 생모 윤씨 폐비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대역죄(大逆罪)로 몰려 앞에서 말한 참혹한 벌들이 내려지는가 하면, 그 죄를 동성팔촌(同姓八寸)에까지 연좌시키게 되었다.

한편 서울 안에서 도적의 무리로 활동하는 이교리의 유모의 아들인 삭불이가 거제로 귀양온 이교리에게 위험이 닥칠 것이란 소문을 얻어듣고 거제 배소로 이교리를 찾아와 그들의 도적무리 속으로 우선 피신을 했다가 좋은 세상이 되거든 나서라는 간청을 해오자 삭불이를 돌려보낸 후, 거제 배소로 오기전 명리학에 이름난 친구 한림 정희량으로부터 ‘액색한 경우를 당하여 자처할 생각까지 날 때가 있거든 이것을 뜯어보게’하면서 받은 사주를 펴본 결과 ‘거제배소개탁’이란 글씨의 봉지 속에 ‘주위상책, 북방길’이란 글을 보게 된 것이다.

③ 林巨正과 이장곤 교리의 거제도 탈출

한편 거제읍에서 보낸 사령이 이교리가 묵고있는 주인집을 찾아와 (원님이) ‘이 때껏 인정을 써오다가 서울 궐자의 말 한마디에(이교리를) 곧 붙잡어다가 객사의 쓰레질을 시키려고’한다는 말을 전하자 이교리는 거제배소에서 도망을 도모한다.

‘침침한 밤중에 거제해변에서 배 한 척이 떠나갔다. 도망하는 이교리와 도망시키는 집주인이 그 배에 탄 것이다. 주인은 이교리를 위해 한참 배질이라도 더하여 줄 작정으로 서편에 있는 고성을 버리고 동북으로 뱃머리를 틀어서 이튿날 새벽에 웅천(熊川)땅에 배를 대고 이교리를 내려놓았다.’

이교리가 거제 배소에서 도망한지 달포가 지나고 처음으로 이교리가 도망한 것이 탄로되자,

‘거제현령은 집주인을 잡아들여 중장(重杖)으로 신문(訊問)하였으나 칭병(稱病)하고 있다가 모야무야에 도망하였다는 것 외에는 별말이 나오지 아니하였고, 거제현령의 치보(馳報)가 경상감영으로 올라가고 경상감사의 장계(狀啓)가 서울로 올라와서 왕이 듣고 왕은 화도 나고 겁도 나서 일변으로 거제현령은 파직 후에 논죄(論罪)하고 경상감사는 추고(推考)하라고 명하고 일변으로 엄중히 기찰하여 기어코 체포하되 체포하는 자에게는 중상(重賞)이 있으리라고 팔도에 령을 내리었다.’

한편 북방으로 숨어든 이교리는 갖은 고생을 하며 함경도 함흥 땅에 들어서서 갈증을 풀려고 빨래하는 처녀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하게 되고, 처녀는 버들잎을 바가지에 띄어 내민다. 이 처녀가 바로 고리백정인 양주삼의 무남독녀 봉단이며 나이는 18세다.

이 인연으로 삼한갑족 양반이자 옥당문관(玉堂文官) 신분인 이교리가 신분을 속이고 백정신분의 봉단과 결혼하게 되며, 집주인이자 장인이 된 백정신분인 양주삼의 처질(妻姪)이 임돌이이고 임돌이의 아들이 이후 소설의 주인공인 임꺽정이다.

이후 소설은 대하의 큰 흐름을 이루면서 서사의 진행은 계속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 거제도로 귀양온 16세기 초의 갑자사화(1504년) 무렵부터 시작하여 백정 임꺽정이 도당을 이루어 대적활동을 하기까지 약 55년간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서두를 장식하는 거제로 귀양온 교리 이장곤에 대한 기록은 대동야승의 ‘이장곤전’, 청구야담의 ‘이학사의 망명’ 등에 이야기로 전하여 오고 있으며, 또한 서두에 나오는 한림 정희량에 대한 기록은 ‘해동야언’이란 책에 전하여 오고 있다.

그밖에도 ‘林巨正’이 ‘기재잡기’ ‘연려실기술’ 등의 자료를 활용한 점 등을 보면 이 소설은 조선시대의 실록 가운데 특히 「명종실록」이나 야담 등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엮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거제가 벽초 홍명희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변방의 유배지로서의 성격으로 활용된 점은 분명하다.

작가는 이러한 문학적 상상을 촉매로 하여 16세기 초반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한 양반사회의 부패상과 서민들인 기층민중사회의 속내를 파악케하여 조선사회의 총체적 역사상을 드러내려고 노력했고, 아울러 ‘林巨正’은 일제시대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무언의 힘으로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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