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자신이 현재 살고있는 지역이 시인이나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형상화되고 그 작품의 미적공간을 반추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행복한 삶의 한 조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거제에서 살고 있거나 거제를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거제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거제를 배경으로 한 우수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삶은 축복받은 삶이 될 것이다.

현대소설 속에서 거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시대 유배지로서의 거제 - 벽초 홍명희의 대하역사소설 ‘林巨正’

① ‘林巨正’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우선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알려진 벽초 홍명희의 미완성 대하역사소설 ‘林巨正’은 그의 나이 41세가 되던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40년 잡지 ‘조광’ 10월호로 연재가 중단된 미완의 대작이다.

햇수로는 13년간을 거치는 동안에 원고지 13,000매 이상의 분량으로 일제시대에 발표된 역사소설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장편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은 중국의 삼국지나 수호지와도 관련되어 언급되는 작품으로, 삼국지가 민중 출신이지만 상층부로 진입한 영웅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췄다면 수호지는 하층민들의 영웅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반면 ‘林巨正’은 다루는 대상에 있어서 삼국지와 수호지가 통합되는, 즉 한 사회의 상하계층이 모두 포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근대 역사소설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를 갖추었다.

또한 林巨正은 소설을 시작하는 첫머리가 우리 고전소설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의 결의형제를 본딴 ‘의형제편’이라는 제목이라든가 수호지의 군도에 닮은 청석골의 군도들 역시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민중들이 즐겨 읽었던 옛날 이야기의 전통을 벽초가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林巨正이 대중성을 갖게 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홍명희의 대하역사소설의 저력이 오늘날 황석영의 ‘장길산’, 박경리의 ‘토지’ 그리고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등의 대하역사소설들이 탄생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하역사소설 ‘林巨正’의 주인공 임꺽정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의 명종실록에 ‘군도’ 형태의 농민저항 가운데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林巨正’의 작가는 이 실록 기사를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하여 작품 구성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하역사소설 ‘林巨正’은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의형제편, 화적편의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이 가운데 봉단편의 서두 부분인 ‘이교리의 귀양’ ‘왕의 무도’ ‘이교리 도망’ 등의 소제목이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 작가 홍명희의 역사적 상상력이 펼쳐지는 부분이다.

내용인즉 연산군 시절 홍문관 교리 벼슬을 하던 이장곤이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 폐비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귀양온 사건이다.

이는 연산군 즉위 10년에 일어났던 갑자사화(1504년) 때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② ‘林巨正’과 이장곤 교리 거제도 귀양

소설 ‘林巨正’은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 폐비사건에 관련되어 왕명에 따라 거제도로 귀양길을 오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장곤이 홍문관 근무를 하던 저녁에 왕의 편전으로 불려갔다가 왕인 연산군이 약물자국과 핏자국이 묻혀있는 적삼을 들어보이며 원수를 갚아야 겠다고 말했을 때 “임금의 원수갚는 법은 필부(匹夫)와 다를 것입네다”라고 충언을 드리며 임금으로서의 ‘덕(德)’을 강조하자 다음날 바로 거제도로 귀양보내라는 왕명이 내려진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이교리가 집에 나와서 아침상을 대하였을 때, 자기를 거제(巨濟)로 정배(征配)하되 배도압송하라는 왕의 명령이 내린 것을 알고 아침을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얼마 아니 있다가 금부도사(禁府都事)의 재촉하는 대로 총총히 귀양길을 떠나 문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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