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도시 거제와 1000만 관광객 유치의 꿈 ②]수군진성 최초의 사적지 태안 안흥진성과 지세포진성
태안 안흥항과 신진항, 중국 사신이 드나들던 곳에서 관광객이 찾는 필수 코스로

거제는 우리나라 지자체중 가장 성곽 유적이 흔한 도시다. 경치가 좋은 산에는 어김없이 산성이 있고 넓은 명당에는 읍성, 바닷가에는 조선 수군의 진성과 관방성이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왜군이 지어 놓은 왜성까지 있다.
거제의 성은 삼국시대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외침에 맞서 거제를 지키려 했던 조상들의 얼이 담긴 곳이며 호국의 표상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거제의 성곽 유적은 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사적이나 지방문화재에 등재된 경우 성곽 주변의 잡풀이나마 제거해주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성인데 한쪽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고 나머지 한쪽은 지정하지 않은 사례까지 있다. 1000년 이상 강토를 지켜온 공에 비해 대접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에 거제신문은 거제지역 성곽문화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거제지역의 성곽 문화재와 국내 및 국외의 성곽 문화재를 비교 분석하는 기획 기사를 계획했다. 단순히 비교 분석이 아닌 거제지역의 성곽 유적이 보유하고 있는 특징인 다양한 시대적 특징과 비교해 성곽유적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내 성곽 또는 관광객이 많은 국내·외 성곽 유적을 찾아 거제지역의 성곽유적을 어떻게 관광지화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최근 조선 경기 불황과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거제지역의 관광지 활성화 및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 거제지역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기획 취재의 목적은 거제지역의 성곽 유적이 거제의 또 다른 관광 효자상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예상해 보는 것이다. 특히 답사를 통해 알게 된 거제와 선견지 유적의 관리실태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한 콘텐츠에 주목할 생각이다.  - 편집자 주

고려와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의 필수 방문지였던 '안흥진성'이 지난해 사적 등재로 관광 활성화에 탄력을 받고 있다. 사진은 안흥진성 남벽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고려와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의 필수 방문지였던 '안흥진성'이 지난해 사적 등재로 관광 활성화에 탄력을 받고 있다. 사진은 안흥진성 남벽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거제에는 조선 통신사와 계해약조 등 일본 외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지세포진성이 있다면 충청남도 태안에는 '안흥진성'이 있다.

1655년(조선 효종 6년)에  안흥항의 뒷산에 돌로 쌓은 이 성은 오랫동안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에 성안의 건물 일부가 불에 탔고, 현재 성안에는 2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유서 깊은 태국사가 있다.

1973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고 태안의 8경중 2경을 자랑하는 '안흥진성'은 지난해 11월2일 국가 문화재 '사적 제560호'로 승격됐다. 안흥진성의 사적 지정은 수군 진성 최초의 사적이 된 사례로 거제지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수군 진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안흥진성의 사례는 태안군이 지방문화재 등록 이후 50여 년 동안 잘 관리하고 보존한 흔적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거제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곳이다.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안흥진성'.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안흥진성'.

안흥진성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수군성(水軍城) 중에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고 문헌상에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 방어용 진성(鎭城)으로 알려졌다. 실제 눈으로 만난 안흥진성은 수백년 전 만들어진 성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았다. 복원된 문루를 제외하더라도 동서남북 문지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데다 거제지역 성곽유적에선 찾아볼 수 없는 여장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안흥진성의 문지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동문지를 제외하면 안흥항과 인근 마을로 이어져 안흥진성 및 주변마을을 탐방하기 좋게 정비돼 있다. 안흥성의 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중턱에 오르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갯벌, 신진도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벽을 오르다 보면 예부터 중국 사신들이 무사 항해를 빌었고, 외적이 침입했을 때 승병(僧兵)을 관할하던 태국사(泰國寺)를 만난다. 태국사는 동학란 때 소멸됐다가 1982년에 중창됐다.

안흥진성의 성벽도 성벽이지만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은 안흥진성 안쪽에 올망졸망 정겹게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인상적이었다. 이 마을의 안길은 태안군과 충청남도의 지원으로 황토를 덧바른 돌담길로 장식하고 있었다.

안흥진성의 정문.
안흥진성의 정문.

안흥진성의 정문인 서문을 나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는 안흥진성과 관련된 선조들의 선정비 등 비석 군락인 '육모정 비석군'을 만날 수 있었고 곧바로 안흥항이 나타났다. 물 빠진 갯벌 위에는 배들이 쉬고 있었고, 하얀 갈매기들은 유유히 하늘을 산책하고 있었다.

태안에서 안흥진성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끝없이 펼쳐진 너른 갯벌과 간척지는 안흥진성이 운영됐던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밀물과 썰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흥진성과 안흥항 앞은 육지와 신진도 섬을 연결하는 신진대교와 안흥나래교 2개가 있다. 안흥나래교는 날아가는 갈매기 한 마리를 형상화한 다리로 길이 300m 해상 인도교로 아치형과 회전형으로 만들어 태안군의 새로운 해양관광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안흥항에서 나래교를 건너면 신진도의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닿을 수 있다.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고선박과 수만 점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이곳은 태안 앞바다에서 발굴한 수많은 수중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박물관 한 가운데 12억원을 들여 실물로 복원한 '마도1호선'의 웅장함이 인상 깊었다.

안흥진성과 신진도를 연결하는 인도교인 안흥나대교. 최근 태안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안흥진성과 신진도를 연결하는 인도교인 안흥나대교. 최근 태안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중국 사신의 기착지 안흥항과 안흥진성

안흥진성이 있는 안흥량은 고려 인종4년(1123년) 고려를 방문해 고려에 대한 기록 '고려도경'을 남긴 송나라의 서긍이 다녀갔을 정도로 중국 사신들의 필수 코스였다.

안흥진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583년(선조16년)에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때는 서해상으로 북상을 시도하는 왜군을 저지하는 요충지로, 병자호란 뒤엔 유사시를 대비한 강화도의 배후 진성 역할을 했다.

효종4년(1653)에는 새로 진이 설치되면서 화정도(花亭島)가 신진도(新津島)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이후 신진(新津)으로 옮긴 수군진은 16년 뒤 현종10년에 구진(舊津)인 현재의 안흥진성으로 다시 옮겨 유지됐다. 특히 안흥진성이 있는 안흥량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곡을 운반하던 조운선(漕運船)과 무역선이 왕래하는 해로의 중간 기착지였고 국가 방어의 길목이었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고려의 개경이나 조선의 한양을 향하던 조운선이 안흥량의 사나운 물결에 빈번히 난파됐다는 문헌의 단골 메뉴였다. 2007년부터 안흥앞바다 대섬과 마도 일대 수중 3만여 점의 해양 유물이 발굴됐다. 발굴과정에선 고려와 조선의 지배계층에게 보내는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과 배송에 대한 자료가 적힌 목간(木簡)과 죽간(竹簡) 등이 발견됐다.

또 안흥량은 고려시대에 국제 해양 무역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였고 이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사신들이 지나가는 요지였다. 태안 앞바다가 풍부한 해저 문화재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해상교통이 발달한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지형적 요인과 자연현상이 어우러진 결과로 서울로 가는 모든 물자는 험난한 태안 앞바다(관장목)를 통과해야 했고 안흥량의 자연조건으로 생긴 해상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태안군에 풍부한 문화재를 안겨줬다.

태안8경 안흥진성과 관광지화 노력

안흥진성의 사적 승격 이후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나래교를 건너 안흥진성의 남문을 통과해 성안 마을을 걷는 코스는 점점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적잖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태안은 세계최대의 모래언덕인 신두사구를 비롯한 태안8경 등 뛰어난 자연경관과 안흥항의 수산물이 관광객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어서 그 가능성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는 태안의 제2경인 안흥성(안흥진성)을 오랜 세월 비바람에도 예전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관리하고, 사적 등재를 위해 힘쓴 태안군의 노력이 뒷받침했던 것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또 사적으로 승격된 안흥진성은 국가가 지원하는 복원사업과 학술조사를 더해 유적으로서 가치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태안군은 안흥진성과 일대의 관광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라고 했다. 다만 최근에는 안흥진성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성곽의 발굴 및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국방과학연구소 내 안흥진성 부지의 반환문제 때문에 고심인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흥진성 주변은 골프장과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안흥나래교·낚시 명소인 안흥항과 신진항의 회센터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꾸준하다고 한다. 태안군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태안이 가지고 있는 해양 문화를 자원으로 태안의 다양한 해양 역사문화를 관광에 접목하는데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거제신문 최대윤 기자가 태안군청에서 안흥진성 관광지화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 모습.
거제신문 최대윤 기자가 태안군청에서 안흥진성 관광지화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 모습.

최근 지세포진성도 한시적이긴 하지만 관광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랜 세월 방치돼 있던 성내 휴경지를 활용해 선창마을 주민들과 거제시가 함께 라벤더를 심으면서 SNS와 입소문을 타고 거제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세종 23년(1441) 만호진으로 설치된 지세포진은 주변 일대의 방수와 더불어 계해약조 때에는 고초도(孤草島)에서 어업하는 왜인들의 문인(文引) 검사, 징세(徵稅) 등의 역할을 담당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지세포진성의 관광인프라나 역사성은 안흥진성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지세포진 인근은 어촌민속전시관관 조선해양박물관·옥림 해안거님길·와현해수욕장·구조라해수욕장 등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대명리조트 등 대규모 숙박시설과 유람선 선착장·펜션촌·식당가 등 관광 인프라 잘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세포진성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라벤더 개화 시기에만 관광객이 찾을뿐 평소에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다.

태안군이 안흥진성을 국가사적으로 등재하고 관광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것과 달리, 지세포진성은 뛰어난 풍광과 역사성·주변의 훌륭한 관광 인프라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된 발굴이나 학술대회·관광화 활성화에 대한 계획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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