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도시 거제와 1000만 관광객 유치의 꿈①]
"거제의 성은 긴 역사속에서 외침에 맞선 조상의 얼과 호국정신이 깃든 삶의 터전"

거제는 우리나라 지자체중 가장 성곽 유적이 흔한 도시다. 경치가 좋은 산에는 어김없이 산성이 있고 넓은 명당에는 읍성, 바닷가에는 조선 수군의 진성과 관방성이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왜군이 지어 놓은 왜성까지 있다. 거제의 성은 삼국시대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외침에 맞서 거제를 지키려 했던 조상들의 얼이 담긴 곳이며 호국의 표상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거제의 성곽 유적은 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사적이나 지방문화재에 등재된 경우 성곽 주변의 잡풀이나마 제거해주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성인데 한쪽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고 나머지 한쪽은 지정하지 않은 사례까지 있다. 1000년 이상 강토를 지켜온 공에 비해 대접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에 거제신문은 거제지역 성곽문화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거제지역의 성곽 문화재와 국내 및 국외의 성곽 문화재를 비교 분석하는 기획 기사를 계획했다. 단순히 비교 분석이 아닌 거제지역의 성곽 유적이 보유하고 있는 특징인 다양한 시대적 특징과 비교해 성곽유적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내 성곽 또는 관광객이 많은 국내·외 성곽 유적을 찾아 거제지역의 성곽유적을 어떻게 관광지화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최근 조선 경기 불황과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거제지역의 관광지 활성화 및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 거제지역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기획 취재의 목적은 거제지역의 성곽 유적이 거제의 또 다른 관광 효자상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예상해 보는 것이다. 특히 답사를 통해 알게 된 거제와 선견지 유적의 관리실태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한 콘텐츠에 주목할 생각이다.  - 편집자 주

거제는 성곽의 보고

거제는 우리나라 최대 성곽유적 보유지(광역 및 서울 제외. 면적대비)중 하나다. 거제지역은 우리나라 성 20개·왜성 4개 등 모두 24개의 성이 거제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다. 단일 섬 지역에 이토록 많은 성곽이 잔존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라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거제의 성은 시대별·종류별로 구분하는 것 외에도 읍성과 진성·치소성·일본과의 교류 등 다양한 방면에서도 연구할 수 있으며, 방어를 위해 쌓은 건축물 인만큼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망권을 자랑하고 있다.

거제지역의 성을 종류별로 나열해 보면 산성이 13곳으로 가장 많고, 평지성이 7곳·왜성이 4곳이다. 시대적으로는 아주현성지·둔덕기성·당산성지·다대산성지(송변현 치소 추정)·거제옥산성을 제외하고 모두 조선시대에 축성됐다.

읍성으로는 고현성·사등성·아주성이 있으며, 관방성 및 수군진성으로 구율포성·옥포성·오량성·가배량성·구영등성·구조라포성·지세포성이 있다.

둔덕기성의 경우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상군과 거제현(기성현)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다대산성·옥산금성은 거제의 속현이었던 송변현과 명진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성으로는 장목성·영등왜성·송진포왜성 등의 산성과 토성으로 축성한 견내량왜성(광리왜성) 등이 있지만, 견내량왜성은 현재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거제지역에 유독 성곽유적이 많은 이유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거제지역이 남해안은 외침이 잦았고, 그에 따라 방어의 최전선 역할을 한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5월 동아대학교 박물관측은 수월성지를 비롯해 고현성지·사등성지·둔덕기성 등 거제지역 곳곳에 산재한 24개 성지의 구조와 축조수법 등을 1년여간 현지실사 및 문헌연구 등을 통해 조사했다.

당시 동아대박물관 측은 거제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그동안 거제시민이 성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보존에 힘쓴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제지역의 성곽유적의 현주소는 너무나 초라하다. 거제지역의 성곽유적중 12개는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12개는 훼손이 심해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소멸 직전이다. 이 사실이 이번 기획취재를 마련하게 된 계기다.

거제시 일운면에 소재한 '지세포진성'
거제시 일운면에 소재한 '지세포진성'

거제의 진보성을 아시나요

거제지역의 여러 성곽 유적중 수군진성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경상우수영에 속한 거제지역에는 6개의 수군진이 존재했는데 이는 경상우수영 전체 수군진(17개)의 41%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거제의 수군 진성은 역사적 자료나 보존 상태와 상관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

조선시대 거제지역에는 8개의 수군 진(鎭)과 보(保)가 있었고 현재는 4개의 수군진성이 남아 있다. 이중 지세포진성은 대마도 정벌 이후 왜구의 방어·관리를 위해 축성됐으며, 조선통신사의 초기 출발지 및 경유지중 하나다.

경남도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지세포진성은 현재 성곽의 형태가 양호한 상태며, 최근 발견된 해자에 대한 학계의 관심도 높은 편이다.

특히 거제지역의 제2 산업인 관광산업과 관련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인근에 대형 숙박업소 및 관광지가 위치해 기본적인 관광 인프라가 훌륭한데다, 성곽을 돌아보는 둘레길의 풍경과 운치도 꽤 좋은 편이다. 또 지난해부터 거제시가 성내에 식재한 허브군락도 적잖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세포성의 비교 대상지는 지난해 수군진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에 등재된 태안군의 안흥진성이다. 지세포성은 조선의 대마도정벌과 계해약조 이후 왜인들을 관리하고 조선통신사의 경유지였다는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안흥진성은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환송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두 성의 비교가 기대된다.

거제시 사등면에 소재한 '사등성'
거제시 사등면에 소재한 '사등성'

거제의 읍성을 아시나요

마을 전체가 성안에 위치해 있는 사등성(경상남도 기념물 제9호)은 주변의 논밭과 주택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거제지역의 각종 문헌 속 거제 역사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곽 유적이다.

사등성는 사등리 평지의 들판에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 986m·높이 6.1m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고려 원종 12년(1271) 왜적의 침입으로 거제도민이 진주·거창 방면으로 피난갔다가 다시 거제도로 주민이 옮겨왔을 때, 수월리에서 나무 울타리를 치고 생활했다. 그러다 세종 4년(1422)에 사등리로 관아를 옮겨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성이 좁고 물이 부족해 고현성으로 관아를 이전하기 전까지 거제읍성으로 사용됐다. 성벽에는 '산음(山陰)', '삼가(三加)', '상(裳)' 등의 글자가 새겨진 석재가 있고 동·서·남·북의 문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ㄱ'자 모양의 옹성이 설치돼 있다. 성벽 주변에는 인접한 들판보다 20m 폭으로 낮게 도랑을 판 해자가 있어 성의 수비를 강화하고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사등성은 유네스코 지정을 준비중인 국내 대표 성곽 유적인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사등성의 역사적 배경과 매력을 소개하고 관광지로 변화를 줄 방안에 대한 힌트를 찾아볼 계획이다.

특히 낙안읍성은 지난 1987년 복원되기 전 거주하던 주민 다수가 현재도 거주하고 있는 국내 성곽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적 관광지중 하나로 사등성의 관광지 활성화 및 사적 등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제시 둔덕면에 소재한 '둔덕기성'
거제시 둔덕면에 소재한 '둔덕기성'

돌담에 맺힌 군주들의 눈물 자국

거제지역 성곽유적의 대표인 사적590호 둔덕기성은 2010년 사적 지정 이후 최근 10년 동안 거제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문화재 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둔덕기성(屯德岐城)은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懸門式) 구조인 동문지(東門址)와 삼국시대 초축(初築)되고 고려시대 수축(修築)된 성벽 등은 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또 둔덕기성에는 인화문토기·상사리(裳四里) 명문기와·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신라 문무왕대 설치된 상군(裳郡) 및 경덕왕대 거제군의 치소성(治所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둔덕기성은 고려역사의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사건인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3년간 거제도에 유폐된 것을 비롯해 조선초 고려 왕족들이 유배된 장소로 기록돼 역사적으로 귀중한 거제의 문화재다. 그러나 여전히 둔덕기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불편하다. 더구나 둔덕기성은 고려 왕족들의 유배 이미지가 관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점에서 삼전도의 한이 서린 남한산성은 의종의 눈물자국이 고인 둔덕기성과 비교하기 좋은 곳이다. 두 곳 모두 나라의 운명을 바꿀만한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임금의 비화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높고 가파른 산세를 이용한 '뛰어난 축성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유는 역사성이나 접근성만이 아니라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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