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성(城)6】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
장목만 입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
시루성, 농암산왜성 등 별칭으로도 불려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은 시루성으로도 불린다.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은 시루성으로도 불린다.

송진포왜성,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만들었나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해발 90m 증산 꼭대기에 있는 송진포왜성은 직선 최단거리로는 200m에 불과한 장목만을 사이에 두고 남쪽 장문포왜성과 마주보고 있다.

송진포왜성은 장문포왜성과 마찬가지로 왜군 제5진 사령관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알려진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가 장문포왜성과 함께 장목만의 입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알려졌다.

선조 27년(1593)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송진포 왜성은 후쿠시마 마사노리 외 쵸우소 모토치카(長宗我部 元親), 도다 가츠타카(戶田勝降)도 축성하고 방어한 성이다.

송진포왜성의 본성인 동쪽 성곽. 사진 아래는 왜성 측량도(송진포 왜성의 실측도를 보면 외성으로 보이는 동쪽 성곽은 동그란 형태에 단순한 구조에 비해 서쪽 성곽은 복잡한 구조로 지어져 있으며 규모도 더 크다).
송진포왜성의 본성인 동쪽 성곽.

임진왜란 때 제5진의 지휘관을 맡아 충청도를 침공한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가 조선침략 전쟁의 공을 인정받아 오와리국의 영주가 됐고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가담해 도요토미파를 공략해 히로시마와 빙고를 영지로 받는다.

송진포왜성은 본성을 가운데 두고 산과 해안에 외성이 하나씩 있다. 현재 본성과 산 쪽 외성 사이에는 궁도장인 금무정과 도로가 건설돼 성이 분리돼 있지만 성곽을 찾아 돌아보기엔 거제지역 성곽 중 가장 편한 곳 중 하나다.

송진포왜성은 장문포왜성과 함께 우리나라에 쌓은 왜성 중 1개의 출정군으로 편성된 시코쿠(四國) 지방의 왜장들이 축성하고 주둔한 왜성이다.

는 왜성 측량도(송진포 왜성의 실측도를 보면 외성으로 보이는 동쪽 성곽은 동그란 형태에 단순한 구조에 비해 서쪽 성곽은 복잡한 구조로 지어져 있으며 규모도 더 크다).
는 왜성 측량도(송진포 왜성의 실측도를 보면 외성으로 보이는 동쪽 성곽은 동그란 형태에 단순한 구조에 비해 서쪽 성곽은 복잡한 구조로 지어져 있으며 규모도 더 크다).

본성과 외성에 각각 천수대를 축조한 독특한 공간구조로 설계된 왜성이라는 구조는 같지만 자료가 부족해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95년 동아대 박물관에서 조사한 산성의 둘레는 420m이고 높이는 3m, 폭은 3.2m이다. 성의 양쪽 봉우리 성(城)에는 천수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주변에 기와조각만 발견되고 있다.

장문포 왜성과 1593년(선조 23년) 일본군들이 쌓은 성으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주민에 따르면 떡시루와 같이 생긴 증산에 있다고 해서 시루성(甑城)이라는 설과 증산이 삼태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농바위라 불렀기 때문에 송진포 왜성을 농암산왜성(籠岩山)이라고도 불렀다.

또 일본어로 성(城)을 '시로'라고 발음하는데서 송진포왜성을 '시루봉', 왜성을 시루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송진왜성에서 바라본 칠천도(북쪽). 부산과 칠천도 방향에서 오는 조선수군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다.
송진왜성에서 바라본 칠천도(북쪽). 부산과 칠천도 방향에서 오는 조선수군을 감시하기 좋은 위치다.

거제시지에는 송진포왜성은 두 봉우리 사이에 성곽을 연결하는 토축을 쌓고, 서북쪽 해안에도 석축 구조물의 선착장과 같은 시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두 성곽을 연결하는 토축은 현재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송진포왜성의 양쪽 성곽은 동서 구릉을 두르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과녁이 위치한 서쪽의 성곽이 본환(本丸·본성)으로 추정되며, 과녁이 있는 동쪽의 성벽이 지환(之丸·외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진포 왜성의 실측도를 보면 외성으로 보이는 동쪽 성곽은 동그란 형태에 단순한 구조에 비해 서쪽 성곽은 복잡한 구조로 지어져 있으며 규모도 더 크다.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

왜성의 이해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국내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는 울산왜성에서부터 서쪽의 순천왜성까지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축성한 성으로 남해안 지역 거점 확보가 주목적이었으며 행좌소와 보급기지 역할을 병행했다.

왜성의 입지적인 특징은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해발 10~250m 정도에 위치한 독립된 구릉이나 산정을 깎아 곽을 배치하고 인근에 지성까지 토루나 석루의 외곽선으로 연결하는 평산성으로 축조하는 경우가 많다.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왜성'

왜성의 구조적 특징은 방어를 중심으로 축조하였기 때문에 지형을 교묘히 이용해 상당히 복잡한 형상과 배치를 이루고 있다. 방형의 곡륜을 다수 축조해 출입문과 통로를 만들어 하부 곡륜의 방어선이 뚫리더라도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윤곽식(輪廓式)·제곽식(梯廓式)·연곽식(連廓式)으로 나눌 수 있다.

왜성은 우리나라 남해안에 있는 천혜의 요새 항구에 왜구를 막기 위해 대부분 기존의 조선의 성을 허물어 나온 석재와 목재를 사용하여 약 40~120일이라는 단기간에 축조했다.

따라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축조된 왜성은 구조와 축조기법이 외형은 일본적이지만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성과 읍성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남해안에는 30여 개의 왜성이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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