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리당략’ 쫓는 구태정치의 ‘옥상옥’
지방자치 역행하는 다수당 횡포 우려
전국 226개 기초의회 중 17곳 교섭단체 구성

거제시의회 전경

거제시의회 안석봉 의원이 최근 발의한 ‘거제시의회 교섭단체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례 없던 정당 중심 ‘교섭단체’ 의원 발의에 대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할 지방자치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21일부터 열리는 제225회 임시회 의회운영위원회에 상정돼 불씨가 될 전망이다.

시의회 내부에서도 상당수 의원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소수정당인 김용운(정의당) 시의원은 “아무 필요도 없는 교섭단체를 만들자니 한마디로 황당하다”면서 “발의안에 예산편성도 가능하다고 돼 있는데 쓸모없는 교섭단체를 굳이 예산을 들여가며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20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방자치 훼손하는 거제시의회 교섭단체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에 따르면 이번 임시회에 상정된 이 조례안은 크게 교섭단체 구성과 기능, 지원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고 일정대로라면 21일 운영위원회를 거쳐 29일 본회의를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거제경실련은 이 조례 제정이 풀뿌리 지방자치의 구심인 지방의회에 교섭단체를 통한 정당정치를 개입시켜 의회의 기능을 왜곡할 것으로 판단하고 분명히 반대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성명서는 이 조례 제정 추진과 관련 △조례의 제정 목적이 타당하지 않다 △교섭단체의 기능이 터무니없다 △교섭단체에 시민의 세금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등 구체적인 반대 이유를 3가지로 요약했다.

성명에 따르면 시의원은 주민의 대표로 지역을 챙기고 시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각종 사업과 수반되는 예산을 감시·감독해야 한다면서, 소명의식을 기르고 학습을 통해 의원 개인의 자질을 향상할 노력을 해야 마땅하지 틀에 갇혀 당론이나 따지고 있을 의원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또 의회는 의회운영위원회가 있고 의원간담회와 의장단 회의·상임위원회가 수시로 열려 의회 운영과 관련한 사항을 논의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교섭단체를 만들어 의회운영을 협의하겠다는 것은 다수 정당의 힘으로 의회운영을 독점하겠다는 횡포이자 필요도 없는 또 다른 옥상옥을 만드는 것을 뿐이라고 직시했다. 

20일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거제시의회 교섭단체구성 반대' 성명서
20일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거제시의회 교섭단체구성 반대' 성명서

특히 조례안은 교섭단체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으나, 굳이 필요도 없는 교섭단체 운영에 세금을 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혹시 ‘교섭단체 소속 의원들의 의견 수렴 및 조정’이나 ‘교섭단체 상호간의 교류·협력’(제3조)에 비용이 필요한지는 모를 일이지만 같은 정당의 의원끼리 모이는 자리는 엄밀히 따지면 당원모임인데도 코로나19로 시민들의 삶은 고통에 허덕이는 마당에 필요하지도 않은 교섭단체 모임·당원 모임에 왜 시민 세금을 써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시민을 설득해 동의를 구하고, 교섭단체가 없어 의회운영에 어려움이 있었고 의정활동에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거제경실련은 이번 교섭단체 추진이 지방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데 있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 의회를 다수당 중심의 ‘교섭단체’라는 틀 아래에 가두어 의회 기능을 무력화시킬 것이 뻔하다며 지금이라도 조례안을 철회하거나 심사과정에서 부결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교섭단체’는 의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의사 진행과 주요사안을 협의하기 위해 일정 수 이상 의원들이 모여 구성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정당 정책’ 추진도 주요 기능이다.

문제는 ‘기초의회에 교섭단체가 과연 필요하냐’는 것이다. 국회와 광역의회를 제외하고 기초의회 226곳 중 교섭단체가 구성된 곳은 현재 17곳에 그친다. 이 가운데 11곳은 시의원 수가 최소 18명에서 최대 39명에 달한다. 인구도 최소 36만에서 최대 118만 명이다. 거제의 경우 인구는 25만 아래로 떨어졌고 의원수는 16명이다.

기초의회 교섭단체 구성이 논란이 되는 더 큰 이유는 ‘지방분권 및 지방자치’와 역행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전국 기초의회 교섭단체 구성률(7.5%)이 미미한 까닭이다.

기초의회는 시민 삶과 직결된 안건을 조례 제정과 시정 질문 등 의정활동으로 풀어가는데 교섭단체 주요기능이기도 한 ‘당론’을 개입시킬 이유가 크게 없다는 것이다. 지역현안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당리당략’을 투사하는 구태정치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기초의회 정당공천 폐해’를 지적하는 여론이 여전한데다, 의회 내부적으로도 이미 ‘상임위원회’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는 집단을 굳이 만들 명분이 무엇이냔 의문도 제기된다.

이번 조례안이 나온 배경에는 8대 시의회 후반기 의장단 구성 당시 내부 분열(?) 문제가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여기다 소속 의원이 한 명 밖에 없는 정의당에 대한 소수정당 억압 문제도 불거질 소지가 다분하다.

‘기초의회 교섭단체 무용론’은 실제 비율에서 나타나듯 전국 곳곳에서 누차 지적돼 왔다. 시의원은 누구나 독립된 기관이며, 근원적으로 정당의 당론이 아닌 지역주민을 대표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섭단체가 구성되면 사안마다 ‘당론’이 우위에 놓이게 되고 지역주민은 자칫 뒷전이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조례안에 대한 21일 의회운영위원회 및 29일 본회의 상정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8대 거제시의회 정당별 의석수는 민주당 10, 국민의힘 5, 정의당 1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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