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행복'의 전문이다.

명절이 되면 고향 가는 차들로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하는가? 거기에는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 만날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반겨줄 사람이 없고 '우리 집'이 없다면 고향은 마음속에만 있을 뿐이다.

조선 중기 때 문신 면앙정 송순(宋純)은 대사헌과 우참찬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전남 담양에 지은 집이 겨우 초가삼간이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당시 양반들은 유교의 덕목인 검소함을 실천하기 위해 작은 집에 살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삶의 개념을 '대하천간 야와팔척(大廈千間 夜臥八尺) /양전만경 일식이승(良田萬頃 日食二升)'에 두었다. '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면 만족하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두 되면 족하니라'

온 나라가 부동산문제로 시끄럽다. 사태의 본질은 시장 자율화를 통한 충분한 공급정책을 펴지 못한데 있다. 부동산 투기는 엄중하게 다스리되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조건인 내 집 하나 갖고 있는 것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가구 1주택까지도 세금폭탄으로 잡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무지하다. 무지는 무능을 낳고, 무능은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잡으라는 집값은 안 잡고 다주택자를 악의 축으로 모는 분노 정치만 보인다.

집 가진 게 죄스러운 세상이다. 가진 자의 아파트는 사용할수록 가격이 오르는 '신기한 중고품'이지만, 아등바등 저축하여 집을 마련하겠다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저녁이 아름다운 삶이 되려면 저녁이면 돌아갈 내 집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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