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거제시 홍보담당관실 언론팀 주무관
박소영 거제시 홍보담당관실 언론팀 주무관

최근 LH 사태를 바라보는 2030 세대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신도시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발표 전 땅을 샀다거나, 추가 보상을 받기 위해 희귀 묘목을 빼곡히 심은 일명 '나무 알박기', 그리고 LH 일부 직원이 국민을 조롱한 태도까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LH 직원의 이런 투기 의혹을 접하고는 요즘 무기력과 불안함을 호소하는 청춘들이 많단다. 월세를 전전하며 주식투자와 오직 내집 마련을 위해 아둥바둥 살고 있는데 이러다 평생 패배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지? 어긋난 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감정은 그들을 더욱 좌절하게 만든다.

얼마 전 거제지역의 핫플레이스 공곶이를 다녀왔다. 한반도의 최남단인 거제에서도 가장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탓에 노란 수선화 물결이 봄의 시작을 한껏 알리고 있었다.

공곶이는 강명식 할아버지와 지상악 할머니가 50여년간 손수 일궈낸 농원이다. 할아버지는 1956년, 마을에 살고 있던 할머니와 선을 보러 와서 뒷산을 산책하다 공곶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10여년 동안 타 지역에서 일해 돈을 마련한 부부는 드디어 1969년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이후 특별한 도구 없이 호미와 삽·곡괭이로만 농원을 가꾸어 왔는데, 그래서인지 연장에서 그간의 열정과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했다.

4만여평이 넘는 농원의 식물은 수선화와 동백나무·종려나무·팔손이 등 종류만 해도 50여종. 동백숲길 계단 하나하나와 수선화 한 송이조차도 모두 이들의 땀과 노력으로 탄생한 경이로운 풍경들이다.

수선화가 만개하는 3~4월이 되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부부는 평생을 일군 아름다운 공곶이를 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도 받지 않고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거제 공곶이에 핀 수선화.
거제 공곶이에 핀 수선화.

그저 예쁜 꽃을 가까이서 보고 느껴서 즐겁고, 그 꽃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또 행복하단다. 노부부의 삶이 왠지 모르게 LH 직원 사태와, 그를 바라보는 청춘들의 시각과 대비돼 문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공곶이에서 처음 터를 잡기 시작한 것도 겨우 30대. 할머니와 결혼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도 물론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곶이가 좋았고, 이곳을 새롭고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과 희망이 컸다. 돈은 딱 먹고 살 만큼만 벌면 됐다. 꽃과 숲을 가꾸는 것을 즐겼고, 그 안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얻었다. 이들은 그거면 충분했던 거다.

할아버지의 나이는 어느덧 91세로 90을 훌쩍 넘겼다. 할머니는 그보다 4살 아래다. 아름다운 꽃과의 삶 덕분인지 두 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고, 너무나도 건강하고 고운 모습이었다. 이제 지칠 만도 하련만 아직도 새벽같이 일어나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간다. 이들은 여전히 이곳을 가꾸고 사랑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입장료가 없어서인지 부부에게 주기 위해 간단한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사 오는 탐방객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부부는 이를 받아 들고 또 다시 커피 한 잔을 대접한다. 공곶이를 꾸미고,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즐겁게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부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간다.

거제 공곶이에 핀 수선화.
거제 공곶이에 핀 수선화.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행복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의 요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희망을 갖는 것, 둘째는 할 일이 있는 것, 셋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비도덕적인 행위로 공공의 이익에 피해를 주고 있는 사람들, 그 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또 그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비하하는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다.

진짜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주저없이 도전하며, 또 그를 베풀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길. 타인과의 불필요한 비교를 버리고, 나 스스로 행복해 지기를.

온통 노란 꿈으로 가득한 밭, 새로운 생명과 희망이 넘쳐나는 공곶이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을 만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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