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태 수필가
하유태 수필가

아직은 캄캄한 새벽시간이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도 새벽잠이 없는지? 새벽 출근 34년 동안 직장생활에 내 몸이 훈련되어 영혼이 굳어버린 탓일까? 아니면 나이 육십 중반으로 접어드니 뭇 사람들처럼 새벽잠이 줄어든 탓일까? 괜스레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새벽시간이다.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몇 번을 거듭한다.

차라리 '새벽길이나 걸어 볼까?'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자 일어나 어둠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고 두꺼운 양말도 신는다. 나 홀로 한 시간가량 새벽길을 걸어야 하니 고독함을 달래 줄 이어폰을 찾는다.

그리고 새벽 기온이 낮으니 귀마개와 장갑을 찾아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꼭두새벽부터 나와 걷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주변의 겨울나무들은 벌거숭이가 된 채 부끄러운 듯 작은 바람에 흔들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연두색·초록색·파란색 순으로 봄과 여름 동안 온 자연을 뒤덮어 줬던 나무들이다.

그런 나무들이 이제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겨울의 길목에서 벌거벗은 몸매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눈만 뜨면 직장으로 나갔다가 습관처럼 저녁이 되면 돌아오던 내 청춘의 시간들을 이제 마감하고 새벽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캄캄하던 어둠이 조금씩 뿌옇게 변해간다. 시간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김없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새벽이 아니라 아침임을 알려주는 새소리가 들린다. 밤새도록 길을 지켜주었던 가로등도 어느 순간 꺼지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새들의 지저귐이 시작된다.

작은 체구지만 소리가 아름다운 '박새', 시끌벅적 요란스럽게 멀리까지 잠을 깨워주는 '직박구리', 몸놀림이 아름답고 소리가 딱딱해서 붙여진 '딱새', 이른 아침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이 울어주는 '까치' 등 볼 수는 없지만 소리로만 그들을 구별하며 새벽길을 걷는다. 아니 이 겨울에 이런 새들이 있으랴마는 어쩌면 내 머릿속으로 만들어 내는 상상의 새소리였을 것이다.

'순간포착!'

그런데 정말 가까이에 있는 나무속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환청인 듯 여겼지만 정말 새소리였다. 나는 가까이로 다가가 휴대폰으로 새소리를 녹음해 본다. 지금 이 소리들을 담아가서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혼자 듣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연의 소리이기에.

갑자기 '신독(愼獨)'이 떠올랐다. 새벽길을 걷는 일은 나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기 시작했다. 혼자 걷는 이 외로움 속에서 진정한 나를 생각하게 한다. 고요는 깊은 심연의 나를 찾아주는 시간이 됐다. 오늘 새벽 나와 걷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잠도 오지 않는 새벽, 그냥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면 이 겨울의 나목들을 보며 내 삶과 비교해 보지 못했을 것이고, 새소리도 녹음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신선한 아침공기에 취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침을 열어주는 새벽길을 걷다보면 어제의 고단함은 땀으로 흘려버리고, 오늘 필요한 에너지는 새벽공기와 함께 새로운 피를 만들며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새벽길을 자주 걸으려 나오고 싶다. 상쾌함을 넘어 신선함과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는 아침을 열어주는 새벽길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새벽길에 친구가 되어 주리라 여기고 가지고 온 이어폰은 내 주머니 속에서 꺼내보지도 않았다. 이 아침의 자연이 이어폰조차 소용없게 만든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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