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촬영한 사등면 성내마을이다. 이때만 해도 새마을사업으로 초가집이 없어지고, 함석지붕과 기와지붕이 나지막한 평화스런 마을이었다. 마을 주위에는 사등성이 있고 성 밖에는 기성초등학교 운동장 주변에 민가가 있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들판에는 황금빛 벼가 익어가고 있다.

이 마을은 삼한시대 변한 12개국 중의 하나였던 두로국(瀆盧國)의 왕도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져 오는 왕도지다. 두로국이 있을 때 대리마을 뒤 산에 솟대가 있고, 마을 앞에는 마산 진해 부산으로 통하는 바다가 있다. 마을 앞으로 겨우 차가 한 대 다닐 정도였다.

1990년 왕복 4차선으로 개설할 때 성 옆으로 나 있는 옛날 길을 확장할 계획이었으나 양정식 군수를 설득해 사등성에서 20m 밖으로 도로를 개설했다. 이때 동아대학 심봉근 박물관장과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협조를 받았다.

사등성은 1271년 왜구의 침입으로 거제 사람들이 거창 가조현과 진주 영선현으로 피난 갔다가 151년만에 되돌아왔다. 수월리에 작은 성을 쌓고 임시로 있으면서, 사등성을 축성했다. 사등성이 협소해 고현성을 쌓아 현아를 고현으로 옮겼다.

1769년 방리 개편때 사등방(沙等坊)이었고, 1889년 사등과 성촌(城村)리로 분리됐다. 1895년에 사등리라고 칭했다. 1913년 사등면 사무소를 성내리 819번지에 두었다가 1919년 지석리로 옮겨 갔다. 1932년 교풍회(矯風會)와 농촌진흥회를 설치해 농촌을 개몽했다.

1942년 5월 사등리를 성내·언양·대리·금포 4개 마을로 분리했다. 마을 앞 해상에는 뱀머리 같이 생긴 사두섬(蛇頭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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