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주 수필가
이양주 수필가

해가 지면 외롭단다. 달이 뜨면 그립단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 그리움이란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단다. 아내인 내가 곁에 있어 덜어주고 채워주긴 하지만 이 세상 올 때부터 가져온 것이라 어쩔 수 없단다. 섭섭해 하지 말란다. 이럴 땐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단다. 나도 그와 비슷한 속말을 품고 있기에 그 맘을 알 것 같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세상 사람들 모두 비슷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보름달이 허공에 홀로 떠 있다. 다 채웠지만, 다시 비워야 할 것을 아는 얼굴이다. 어쩌면 달도 그리움 때문에 뜨고 지는 게 아닐까. 달이 자꾸 부르는 것 같다.

시어른 두 분을 모셔놓은 공원묘지의 언덕을 오른다. 혼자라면 이 밤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가 함께 있기에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은 훤하다. 공원묘지가 있는 도시에 살 때,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을 때는 소풍 겸 찾아와 수없이 걷던 길이다.

공원묘지는 사시사철 화려한 꽃들로 그야말로 꽃동산을 이룬다. 고인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조화를 바치는 심경은 어떤 것일까. 나는 자주 드나들면서 그 꽃들도 시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 처음 주소를 둘 때 화려한 봉분과 장식물로 생전의 영광을 자랑하던 무덤들도, 시간이 점점 흐르고 산 자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면서 잡초가 우거지고, 잊혀져가는 서러운 자의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을 보았다. 고인을 기억하고 찾는 걸음 수에 비례해서 꽃의 빛은 바래어 시들어 가고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남편은 늦깎이로 결혼했다. 부모님이 떠나실 때 혼자여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시게 한 불효를 했다고 생각하였는지, 남편은 결혼 초부터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산소에 오면 우리는 먼저 잡초를 뽑고 잔디를 고르고 심어놓은 두 그루 향나무를 전지한다. 겹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남편은 떨어진 꽃잎들을 가득 담고 와 무덤에 꽃 이불을 덮어드렸다. 산소 손질이 끝나면 향을 피우고 맑은 녹차를 고운 찻잔에 부어드린다. 남편은 두 분이 내 노래를 좋아하실 거라며 한 곡조 뽑으라고 한다. 봉분의 곡선이 어머니의 젖가슴 같아서 쓸쓸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늘은 열려 있다. 구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바람이 다녀가나 자취 없다. 노래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허공에 소리를 놓는다. 듣고 계십니까.

아까 앞장섰던 달이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말 걸어 주지도 않는 외로운 이에게 달은 유일한 위안일 수 있다. 어둠은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은 자, 남은 자와 사라진 자의 분별을 없앤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세상을 감싸고 있는 달빛이 가르는 세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모든 것이 하나로 편안하게 녹아드는 느낌이다. 사방이 고요하다. 달빛을 받으며 누워 있는 자들에게서 평화로운 침묵이 흐른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들과 같이 침묵하며 영원히 누우리라.

남편이 가만히 내 손을 잡는다. 고맙고 미안하단다.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머문다. 그가 내 그리움을 헤아리는 까닭이리라. 우리 어머니는 한 줌 재로 강물에 흘러 가셨기에 보고 싶어도 찾아갈 곳 하나 없는 내 마음의 오래된 빈자리를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삶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찾아 그 의미를 물어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안해 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리움을 확인하는 자리가 작은 평수의 이곳이라면 우리 어머니는 제 마음 가는 곳이면 어디든 계신답니다. 그리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기억하는 자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저 달은 우리가 가고도 더 오래도록 남아 수많은 그리움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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