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의 코로나 환자수도 줄어드는가 싶더니 다시 감염자가 늘어나서 요즘은 하루에 100~200명씩 확진자가 생겨난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러 가고 싶어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머뭇거리게 된다. 이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처음처럼 갑갑한 일도 아니고 거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일만큼 필수적인 외출 아이템이 됐다.

혹자들은 인류의 삶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언젠가 백신이 개발돼 코로나19에 대해 면역력을 가지게 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14세기 1348년께 유럽 전역에 걸쳐 페스트, 즉 흑사병이 유행했다. 당시 유럽은 불결한 위생환경과 빈약한 영양상태로 면역력 약화로 인해 인구의 30~50%가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흑사병은 병의 진행속도가 굉장히 빠르며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전염병 중 사람을 가장 단시간에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병이기도 하다. 급성 페스트로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약 6시간이다. 치사율도 굉장히 높다. 보통 치사율과 전염성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50~90%에 달하는 흑사병의 치사율은 그 전염성 못지않게 굉장히 높은 편이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유입 경로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 몽골에서 발현됐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주로 흑사병균에 감염된 쥐로부터 인간에게 옮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몽골의 킵차크 칸국은 흑해 연안에 있는 베네치아의 도시 타나와 제노바의 도시 카파를 공격했다. 카파 포위가 길어지자 몽골 군대는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 성안으로 날려보냈고 그 결과 흑사병은 카파를 덮쳤다. 이후 제노바의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상륙해 유럽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오늘날로 보자면 일종의 세균전인 셈이다.

흑사병 창궐 이후 유럽에서는 인구가 줄어들자 노동력이 귀해지고 그 결과 농노의 처우가 나아졌다. 자영농이 늘었으며 장원 체제가 해체되고, 해방된 농노가 도시로 이주하며 상공업이 발달해 화폐 경제가 확산됐다. 또한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에서 돈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이 늘면서 유럽 르네상스 시작의 출발점이 됐다. 비록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인류가 희생되고 도시와 농촌이 황폐화 됐지만 더불어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를 겪은 이후 인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나는 인류의 의료기술과 전염병에 대처하는 능력은 한층 더 발전하고, 또 다른 유익한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리라고 긍정적으로 믿는 바이다.

작은 의미에서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고 마치 죽을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지만 그 상황이 지나가면 내가 한층 더 성숙해져 있고 같은 상황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나 좀더 단단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차원의 의식을 가지게 되고 강한 정신력과 대처 능력이 생기지 않던가. 무엇보다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포용력이 생긴 나를 발견할 때의 흐뭇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사람의 의식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른다는 사실이 너무 반갑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 상황은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하리라. 그래서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를 마시고 원하는 곳에서 마음껏 식사를 하며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여행을 다녀오는 그런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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