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로 당도가 떨어지고 코로나로 농장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 속상한데 맘대로 과일을 골라 담는 진상손님들 때문에 과수농가의 한숨이 깊다.

지난 주말 자신의 거봉농장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거봉포도를 팔던 A씨.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손님이 팔기 위해 상자에 담아놓은 거봉포도를 아무런 말도 없이 똑똑 따서 먹었다.

포도상자 바로 옆에 맛보기로 씻어놓은 포도가 있는데도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파는 물건을 따서 먹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손님들한테 파는 건데 물어보지도 않고 따서 드시면 어쩌냐고 했더니 '내가 사면 될 것 아니냐'며 차에 가서 물어보고 온다고 하고선 차를 타고 그냥 가버렸다. 

지난 주말 또다른 둔덕면 포도농장에서 거봉포도를 팔던 B씨. 50대 후반의 여성 손님이 포도가 담겨진 박스 여러 개를 열고서는 포도송이가 굵고 맘에 드는 것만 골라 1박스에 담아 달라고 했다. 5kg에 맞춰 크고 작은 송이들을 골고루 담아 놓은 박스를 마구 헤집어 놓아 속상했다. 고른 게 5kg가 넘는다고 했더니 산지니까 덤으로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따지듯 얘기하는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좋은 것만 골라서 가져가 버리면 나머지는 어떻게 팔며, 제 값을 치뤄야 함이 마땅한데도 덤이라며 우기는 처사는 해도 너무했다. 맛보기로 내놓은 포도를 맛보고 가격이나 상품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도 상관없지만, 일년 동안 구슬땀 흘려가며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농민의 마음에 멍까지 들게 해서야 되겠는가.

지난 8월초 대형마트에서 젊은 부부가 복숭아 한 박스를 사려고 고르고 있었다. 박스 뚜껑에 복숭아가 보이게 투명창이 달려 있었는데 박스마다 일일이 손으로 다 눌러 보고 있었다. 직원이 달려와 제지하자 안사면 될 것 아니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쳐 주위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감농사를 하는 부모님댁 농장에서 감을 팔았던 B씨. 관광버스가 농장 앞에 서더니 감 2박스를 사면서 검은봉지를 손에 든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마치 마트에서 쇼핑을 하듯이 순식간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버스로 사라졌다. 뭐라고 말릴 새도 없었고 너무나 억울해서 경찰서에 신고해 벌금을 받아 냈다.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2017년 34가구, 2018년 53가구, 2019년 76가구가 거제지역으로 귀농했다. 이 귀농인들 중 신청자에 한해 세대당 창업자금 3억원과 주택 구입·신축 자금 7500만원을 융자 지원했다.

귀농인들 중 몇몇은 둔덕면에서 거봉포도를 비롯해 여러 가지 포도 종류를 심고 가꿔 현지 농장에서 직접 판매도 한다.

현지 농장에서 포도를 직접 판매하는 농민들에 따르면 포도 판매철이면 농장마다 돌아다니며 맛만 보는 '맛팅'족들이 더러 있다. 좀 심하다 싶어 한마디라도 하면 당장 시골인심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듣기 싫은 소리들을 한다.

반면에 가끔은 긴 장마와 무더위에 수고하며 맛있게 잘 먹겠다고 하면서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는 아름다운 고객들도 있다. 덤으로 더 드려도 남는 게 뭐가 있냐며 안주셔도 된다고 도망가듯이 가는 분들도 있다.

맛보기로 내놓은 과일을 맛만 보고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도 상관없지만, 일 년 동안 땀 흘려가며 자식같이 애지중지 키운 농민의 마음에 멍까지 들게 하는 손님은 진짜 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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