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다크투어리즘1-'둔덕권 다크투어리즘'] 아픈 역사현장에서 교훈을 얻는 여행
한산대첩 시작된 견내량에서 의종이 남긴 발자국 찾아가는 '둔덕권 다크투어리즘'

세계최대의 조선도시인 거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이다. 또한 4면이 바다인 섬인데다, 일본과 최단거리에 위치한 한반도 최남단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늘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기에 거제는 영광의 역사와 함께 오욕의 역사도 함께 간직하며 영욕의 세월을 이어왔다.

고려 의종의 한이 서려있는 거제둔덕기성, 임진왜란의 옥포대첩과 한산대첩, 정유재란의 칠천량해전,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6.25전쟁의 상흔인 거제도포로수용소와 흥남철수작전 등 아직까지 거제에는 수많은 아픔의 역사와 유적이 남아 있다.

이에 거제신문은 지난해 거제도포로수용소를 테마로 '아픔의 역사 거제, 평화로 치유하다'란 기획취재를 통해 8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보도해 2019년 지역신문 컨퍼런스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연장선상으로 올해는 '아픔의 역사 현장에서 교훈을 얻는 여행-거제다크투어리즘'을 기획해 새로운 관광콘텐츠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 아픈 역사현장과 테마가 어우러진 스토리텔링 및 탐방코스 개발로 지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관광활성화에도 힘을 보태 지역언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거제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중요 유적과 역사가 시대별로 빠짐없이 남아있는 전국에서도 유래가 드문 역사의 고장이다. 빼어난 자연풍광을 바탕으로 아픈 역사의 현장을 답사함으로써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의 최적지로 떠오른다. 다크투어리즘이란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본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란 전제하에 '거제 다크투어리즘' 기획취재를 통해 오욕의 역사라는 이유 등으로 무분별하게 방치되거나 훼손되고 있는 상흔들을 재조명하고 체계화 해 아픈 역사를 알리는 관광자원으로 삼아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일본 등 국제적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또 다양한 역사 현장 및 유적 등을 코스별 다크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국제적 관광자원화를 기대한다.

탐사·취재한 내용을 7월부터 지면에 게재할 계획이다. 보도는 시대별 또는 주제별 보도를 검토했으나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기획의도에 따라 권역별로 분류해 연재한다. 일부 역사적 고증에 대한 대한 정보와 사진물 등은 외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보도가 마무리되는 10월께 취재보도한 내용과 자료를 토대로 '거제 다크투어리즘' 가이드북을 제작해 결과물을 홍보할 계획이다. 거제 다크투어리즘 가이드북은 거제의 역사와 매력을 널리 알림으로써 한려수도 거제의 풍광과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걸맞은 안내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역사의 아프을 안고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거제대교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견내량.
역사의 아프을 안고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거제대교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견내량.

비극적 역사와 전쟁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거제 다크투어리즘은 시대적·지리적 거제의 관문인 견내량에서 시작한다. 도서지역인 거제는 예로부터 견내량을 통해 육지와 오고 갔다. 육지와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주요 관문이었고, 2개의 거제대교가 놓여진 지금도 교통의 요충지다.

'견내량(見乃梁)'은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거제대교의 아래쪽에 위치한 길이 3㎞, 폭 180~400m의 좁은 해협이다.

고려시대 무신난을 피해 의종왕이 이 해협을 통해 거제에 첫발을 내디뎠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는 한산대첩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무신난을 일으킨 정중부에 의해 거제도로 쫓겨와 나룻배를 타고 견내량을 건넌 의종은 현재의 둔덕면 거림리 거제둔덕기성 부근에서 3년간 유폐생활을 보냈다. 의종이 견내량을 건넜다는 유래로 거제시민들은 지금도 이곳을 황제인 전하가 건넌 '전하도(殿下渡)'라 부르며 의종의 한(限)을 기리기도 한다. 전하도를 건너 둔덕기성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의종의 발자취를 뒤쫓으며 폐왕의 쓰라린 울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것도 다크투어리즘의 묘미일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호령과 조선수군의 함성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정이다.

지도 = 둔덕권
지도 = 둔덕권

적선 유인한 견내량 해협엔 '왕의 미역' 따는 어선들 장관

견내량 해협 양쪽에는 작은 섬들이 많고 물살이 거세 예로부터 이곳에서 생산되는 돌미역은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견내량 돌미역을 채취해 임금에게 진상한 것으로 기록돼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지금은 '왕의 미역' 또는 '전하도 미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기 특산품인 견내량 돌미역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한다.

5월이면 어선을 이용해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는 풍경도 볼거리다. 수십척의 어선이 빠른 물살도 아랑곳 않고 '트릿대'라는 긴 장대로 해협 밑바닥을 긁어 미역을 채취하는 삶의 현장이다. 어민들은 반세기도 훌쩍 넘은(600년 가량) 이 전통 채취방식을 고수하며 험한 조류와 풍파를 헤쳐오고 있다. 그런 덕에 견내량 돌미역과 전통 채취방식 등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견내량 해협은 한산대첩이 시작된 곳으로 전쟁터였던 어구~한산만과 지척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인으로 견내량 해협을 통과한 왜적들은 거제 어구 앞바다에서 수몰됐다.

'왜성'이란 이유로 사라지는 견내량성…보존·관리 아쉬워

한산대첩의 승리로 서해를 거쳐 북상하려던 왜 수군의 전략이 완전히 바꿨다. 반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여세를 몰아 왜군의 본거지인 부산포 왜군을 묶어두고, 남해안 재해권을 장악해 왜군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했다.

한산도를 바라보며 견내량에서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라는 장군의 충정을 소리쳐 되뇌고 견내량 왜성이 있던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거제도 북쪽 영등포·송진포·장문포 등 3곳에 왜성을 쌓아 수비에 치중하고, 이후 정유재란 때 거제도 서쪽 끝인 이곳 견내량에 추가로 왜성을 쌓았다. 산꼭대기에 있는 다른 왜성과 달리 견내량 왜성은 평지에 자리 잡았지만 왜성이라는 이유와 세월의 흐름 등으로 지금은 성곽을 찾아볼 수 없으며 흔적만 남아 있다. 복원이 아니라도 발굴과 관리가 필요하다.

견내량을 뒤로 하고 고려 의종의 발자취를 쫓아 둔덕면 거림리 '거제 둔덕기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폐왕성과 피왕성이라고도 불린다. 해발 326m의 둔덕면 우봉산 자락에 위치한 거제 둔덕기성은 무신정변으로 거제에 유폐된 고려 의종이 1170년부터 3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다. 의종왕과 왕을 따르던 왕족과 신하들이 이곳으로 피신 와 살면서 고려촌을 만들었던 곳이다.

사적 제509호로 지정된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며, 삼국시대 처음 쌓았다. 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성이며 일부를 복원하는 정비사업도 했다.

거제둔덕기성
거제둔덕기성

거제둔덕기성과 정과정곡 '내님이 그리사와 우나다니…'
곳곳이 포토존, 연지 반영 사진은 인생샷으로 손색없어

의종이 계림(경주)에서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이곳에 남아 있던 신하와 백성들은 섣달그믐 의종을 추모하는 춤제를 올렸으며, 이 추모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둔덕기성의 남쪽에 발굴·복원된 연지 뻘층에서 토기와 청자접시·기와·청동그릇 파편·화살촉·구유·멍에·괭이·나무망치·소뼈 등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친 유물 수백점이 나왔다. 연지 바닥층에서 찾은 청자상감입문매병은 12세기 중후반의 유물로 의종의 유배와 관련된 성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성곽 입구 한켠에는 1157년(의종 11년)에 거제도로 유배 온 정서(鄭敍) 정사문(鄭嗣文)이 지은 '정과정(鄭瓜亭)곡' 시비가 서 있다. 유배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이 정과정곡은 정서가 의종의 정을 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내에서는 거제와 통영 전역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좋다. 특히 성내 서쪽과 북쪽 끝단에서 주변전경을 배경삼은 포토존은 탐방객들로부터 인기 만점이다. 또 집수시설인 연지 물에 비치는 반영을 함께 담은 사진은 분위기 있는 인생샷으로도 손색없다.

둔덕기성 아래 거림리 들판은 고려역사의 생생한 장을 보여준 '고려촌'의 집터가 발굴됐던 기성현지다.

둔덕기성
거제둔덕기성 내 연지 모습.
둔덕기성
둔덕기성에서 바라본 전경. 멀리 거제시 중심 시가지로 가는 국도의 모습이 보인다.

창고·재래주택 리모델링 한 커피숍·빵집 등 멋과 맛으로 인기
산방산·공주샘·비원·청마꽃들축제·농촌체험 등 볼거리도 많아

둔덕기성 현지 맞은편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가 인상 깊다. 허름한 외관에 반해 파인애플을 주제로 꾸민 농촌정취가 가미된 멋스런 분위기에 커피향을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앞서 들렀던 둔덕면 소재지인 하둔에도 유사한 분위기의 카페와 빵집 등이 문전성시였다. 기존의 재래주택과 점포에 최소한의 인테리어였지만 어디서 왜 찾아왔는지 모를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이웃집 같이 편안하면서 예전의 시골향수와 정을 찾아 온 이들일 게다. 맛은 기본이고 정은 덤일 게 틀림없다. 거제시에서 가장 시골스러운 둔덕면에 최근 들어 이같은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여는 현상도 눈여겨 볼 일이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발길은 다시 방하리 청마 유치환 생가를 지나 공주샘으로 향한다. 

청마생가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공주샘은 의종왕의 공주가 좋은 물을 길렀다고 전해져 공주샘으로 불린다. 현재는 민가 앞 귀퉁이에 공주샘이라는 비석과 함께 초라하게 남아있다.

다행이 최근 한 단체에서 공주샘 인근 담벼락에 공주를 모티브로 한 벽화를 그려 눈길을 끈다. 아무리 피난생활이지만 설마 공주가 여기까지 물을 길러 왔겠냐마는 답답한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자주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샘물 맛을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공주샘은 현재 먹을 수 없다. 체계적인 관리와 스토리텔링으로 탐방객들이 의종과 화순공주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있도록 관광자원화 하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둔덕기성과 기성현지 등 주변의 문화유적에 대한 현실성 있는 정비계획을 세워 고려촌을 복원하자는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다.

방하리와 거림리 일대는 유적뿐 아니라 청마꽃들축제로 유명하다. 축제가 열리는 9월이면 일대 들판과 도로·하천 등에 코스모스 등 가을꽃이 만발해 꽃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으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한여름이면 둔덕 특용작물인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 입맛을 당긴다. 곳곳에 산재한 유적과 재미를 곁들인 볼거리는 둔덕 다크투어리즘의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거제의 명산 중 하나인 산방산은 유난히 전설이 많다. 그중 고려 망국의 한을 품은 충신 옥사온이 은둔해 살았다고 전해지는 '옥굴'이 유명하다. 그래서 일각에선 옥굴을 '거제의 두문동(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고려 유신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는 별칭도 있다. 정확한 고증은 없지만 옥사온과 옥굴 이야기는 재조명해야 할 부분이다.

이밖에도 산방산은 삼실굴(부처굴)·무제터(무지개터)·오색토 등 재미난 이야기와 볼거리도 많아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산방산 자락의 거대한 자연식물원인 '비원'도 둘러볼만하다. 5만여평의 비원은 폭포와 계곡이 흐르고 1000여종의 야생화 등이 계절을 달리하며 피어나는 탐스러운 화원이다.

도심 인근의 수목원과 달리 아침이면 산방산을 휘감아 도는 운무에 싸이고, 계곡에는 가재·메기·붕어 등 민물고기가 헤엄친다. 사람의 손길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흔적이 엿보이며, 편리한 시멘트길 대신 흙길과 계곡이 어우러진 생태공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성현지가 있던 옛 둔덕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둔덕時골 농촌체험센터'는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교류의 장으로 새롭게 변신해 많은 휴양객들이 찾는 곳이다. 객실과 세미나실 및 식당(100여명 수용)·물놀이체험장·운동장·야외 어린이놀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MT·워크숍·세미나·교육·동문회 모임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이 '둔덕時골 농촌체험센터'는 둔덕권역 다크투어리즘의 지친 몸을 다독이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청마 유치환 생가를 지나면 고려 공주가 물을 길러왔다는 샘이 나온다.
둔덕 청마기념관 전경
창고를 개조해 운영중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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