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 '동' 바다 '해'자를 써 해동이라 이름 지어질 때부터였을까. 동쪽끝 바닷가 거제도에 와서 의사로 밥값하며 살아가라는 운명의 시작이다. 박 원장 아버지는 "남자는 밥값을 해야 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한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부산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 후, 첫 직장으로 들어온 병원에서 지금껏 17년째 근무중이다. "진료했던 환자 중 60대는 80대가 되고 중학생이던 환자는 학부형이 돼 소아과 예방접종실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박 원장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종합병원 원장님이라는 직함 때문에 근엄하고 점잖은 모습의 인상을 상상했는데 친근한 눈웃음과 부드러운 미소로 소년처럼 공손하게 환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흡사 친부모가 내원한듯한 화기애애함에 의아해하자 간호사는 3내과 박 원장을 찾는 모든 환자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대한다며 귀띔한다.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어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 했다는 박 원장. 하지만 누군가 인생은 거꾸로 된다 했던가. 초등학교 때 병약했던 어머니를 모시고 간 동네 의원에서 운명적인 멘토를 만난다. 모든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며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감동은 소년의 꿈을 단번에 바꿨다. 소년은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고 지금 그는 처음 지닌 꿈과는 너무도 다른, 구속된 공간, 좁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자유로움을 위해 하루를 쪼개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행복과 만족이 읽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는 가운 호주머니에서 낡아 해진 넥타이 하나를 꺼냈다. 넥타이는 오래전 폐암 말기 환자였던 고령자가 돌아가시기 전에 준 선물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자신에게 한결같은 정성을 들이는 박 원장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나한테 했듯이 다른 모든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넥타이가 낡아 더는 매지 못하게 돼 이제 호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의사로서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늘 꺼내 본다"고 말하는 박 원장의 눈길에 의연함이 묻어 있다.

박 원장은 최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24시간 비상체제라 하루 2~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 입원환자를 살피고, 외래환자 진료를 보는 한편 선별진료소 진료도 교대로 들어간다. 만약의 경우 집단발병 시 신속한 의료지원을 해야 하니 박 원장을 포함 모든 의료진의 동선이 제한돼 있다.

거제를 대표한다는 병원의 원장직함을 지닌 만큼 여러 짐으로 힘들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취미가 영화감상이고 여행인데 영화는 본지 꽤 오래 됐고 여행은 여름휴가나 돼야 가니 병원 나오는 걸로 취미를 바꿔야겠다"고 농담을 던진다.

거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에 대해 질문했다.

"나를 위해 또 타인을 위해 마스크를 껴야한다. 손을 꼼꼼히 씻고 기침예절을 지키자"며 전파를 막는 방법을 소개한다. 또 "의심증상이 느껴지면 2~3일 자가격리하고 지속되면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고 이동 시는 자차를 이용해 달라. 환자중에 자가격리를 요청해도 이동하는 경우가 있어 위험하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 여기고 항상 대비해야 한다. 유행지역에 있는 가족은 거제방문을 자제해 달라. 거제시민들도 잠잠해 질 때까지 외출을 자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이 많이 힘들다.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누구의 소중한 가족이다. 직원 모두가 헌신해서 거제시민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저희 의료진을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협조와 격려를 부탁드린다"며 직원들의 노고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꽃중에 제일 예쁜 꽃이 인(人)꽃이라고 어머니께 자주 들었다 한다. 그러면서 "진료를 마치고 완쾌돼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면서 인꽃을 활짝 피우실 때, 그때가 의사로서 가장 행복하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의 얼굴에도 분명 인꽃은 피고 있었다. 소신을 가지고 한 분야를 한결같이 걸어온 사람이 묵묵히 피우는 인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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