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통영에서 장평동에 있는 아파트 10층으로 이사를 온 최수라(48)씨. 주차공간·놀이터도 넓고 상가·은행도 가깝고 반상회에서 만났던 통로 이웃들도 다들 친절해서 날마다 정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지난 1월 엘리베이트가 점검중이기에 운동삼아 계단을 이용해 걸어서 내려왔다. 그런데 층층마다 계단손잡이에 묶인 자전거·화분·철제장바구니·우산꽂이, 심지어 신발이 있는 신발장·의자·쇼파까지 온갖 생활용품들을 집밖으로 내다 놓고 살고 있었다. 적치물들을 요리조리 피해 계단을 내려오니 시간도 많이 걸렸고 짜증은 덤으로 추가됐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와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시 비상구 적치물로 인해 미처 피하지 못한 수십명의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가?

그런데도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아파트 계단에 온갖 생활용품들을 버젓이 방치해 두는 것은 '설마 우리 아파트에 화재가 날까?'라는 안일한 생각들의 결과이지 싶어 씁쓸했다. 이웃 주민들과 사이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돼 신고는 못하고 관리사무소에 요구했다. 화재시 비상통로가 될 계단에 방치된 적치물들을 집안으로 들이도록.

그리고 우리 거제시는 비상구 적치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거제소방서에 문의했다. 현행 소방시설법은 비상구와 같은 피난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놨다. 거제소방서에 따르면 건물 비상구에 적치물을 쌓아뒀다가 적발된 건수는 2017년 11건, 2018년 29건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였다. 

행위가 적발되면 2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비상구 신고 포상금' 제도를 시행해 5만원상당의 현물(온누리상품권·소화기·단독경보감지기)을 지급한다. 신고대상 건물은 근린 생활시설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규모 판매시설과 숙박시설 등의 비상구가 대상이다.

최근 지인과 고현동 5층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데 4층으로 향하는 비상구에 성인 한명이 지나가기도 힘들만큼 많은 재료 상자들을 쌓아두고 있었다. 비상계단을 창고처럼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거제소방서 관계자는 "건물 관계자와 이용자들이 피난시설 환경 개선 및 안전문화 확산에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대형화재 및 이상기온으로 태풍·지진 등 대형 재난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수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고들 있는데도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높다. 위급상황 시 유일한 탈출 통로인 건물 비상구(계단)는 '생명을 구하는 통로'이지 '창고'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내 집앞 계단이나 통로에 내어 놓은 물건들만이라도 집안으로 들여 깨끗한 환경은 물론 긴급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비상구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자.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