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29.5㎝×64.5㎝·1954년 종이에 유채)

대향 이중섭은 1916년 4월10일 평남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 어린시절은 늘 그림을 그렸으며 보통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에 입학해 후기인상파 계열의 화가로 예일대에서 공부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임용련을 만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37년 일본 분카가쿠엔(文化學院)에 입학해 김병기·유영국·문학수 등을 만나 교류했으며 평생의 친구인 시인 구상과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났다. 그는 분카가쿠엔의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를 좋아했으며, 이곳에서 전위 미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강인하고 굵은 선이 특징인 그의 화풍도 이 시기에 형성됐다.

그러나 시대는 이중섭에게 화가로, 인간으로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선사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은 군국주의로 치달았으며 사상과 예술활동은 억압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연인 마사코와도 이별하고 194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한 화가로서의 길이 막혀 깊은 좌절의 나날을 보냈지만 마사코가 원산으로 찾아오면서 그의 삶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 그는 아내와 두 아들·조카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부산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다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도 생활이 어려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부산으로 건너왔지만 1952년 7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가족을 떠나보낸 허전함은 배고픔 보다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 그의 방황을 보다 못한 친구 구상이 어렵게 선원증을 구해줘 일본으로 건너갔다.

가족들과 짧은 재회를 하고 돌아온 그는 작품활동에 전념하며 1952년 12월 한묵·박고석·손응성·이봉상과 함께 기조전을 열었으며, 1953년에는 4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통영의 성림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또 1955년 1월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이 전시에 유화 41점·연필화1점·은종이 그림을 비롯한 소묘 10여점을 전시했다.

이 전시회는 호평을 받았으나 은종이 그림이 춘화(春花)라는 이유로 철거되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림 값도 떼이면서 이중섭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실의에 빠졌다. 얼마 후 은지화는 대구에서 전시 중 당시 미국문화원 책임자 맥타가트에 의해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돼 이중섭을 알리게 되는 주요 작품이 됐다.

희망으로 시작한 미도파백화점 개인전은 오히려 이중섭을 깊은 절망에 빠지게 했다. 이 전시를 위해 준비한 '길 떠나는 가족'은 일본에 가족을 보내고 상실감과 외로움에 빠진 스스로에게 행복의 최면을 거는 그림으로 가족에 대한 애잔한 심정이 잘 담겨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중섭은 1956년 9월6일 41세로 짧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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