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자연재해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은 깊어가는데, 국민들은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고 제각기 혼자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개인주의적 생존전략이 사회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억울하다'는 승복 부재의 감정과 '나는 네가 싫다'는 타자 혐오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도 전반적인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면서 교류와 상생의 기운이 가시고 '각자도생'의 정책이 대두되는 가운데, 나라 안에서도 문제 해결의 기미가 속 시원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고령화는 진전되는데, 청년실업은 늘어만 가고, 국가의 능력은 신뢰할 수 없고, 직장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연대감도 급속히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좌절과 범죄의 증가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현실화됐던 심각한 소비 절벽의 시나리오가 우리에게도 현실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 이러한 부정적인 기운을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지향하는 자생적 시스템의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각자도생'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제각기 살 길을 도모함'이다. 조선시대에 대기근과 전쟁으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때 백성들 스스로가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을 필두로 국제 정세가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각자도생'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도 마찬가지다. 위태로운 건 국제 정세뿐만이 아니다. 나라 안 상황도 기업과 정부를 향한 불신과 불안이 팽배해 국민은 각개전투를 벌릴 수밖에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먹거리와 생필품·안전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걱정과 한숨이 나온다.

2016·2017년에도 재난에 대한 유언비어로 '생존배낭'이 불안을 잠재우는 도피처 역할을 했다. '생존배낭'은 재난·재해 시 구조를 기다리며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식료품 등 물품을 담은 배낭을 일컫는다. 2016년에 경주에 비교적 강한 지진이 발생하면서 높아진 불안 심리가 '생존배낭'의 구매로 이어졌다. 2017년에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잦아지자 또다시 '생존배낭'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세상에 믿고 먹을 게 하나도 없다' 어느 신문의 기사였다. 2017년에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 중 하나인 달걀이 문제가 되면서 식품시장 전반을 향한 의심과 불안이 가중됐다. 닭에 기생하는 벼룩이나 진드기 등을 없애는데 쓰는 살충제가 달걀에서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도 살충제 달걀이 발견됐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은 4세 아동이 일명 '햄버거병'이라 불리는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앓고난 후 신장장애를 갖게 된 사건도 전 국민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각자도생'이라는 이상 현상이 재난이나 식품안전 분야를 넘어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되는 거대한 증후군이 되고 있어 보다 장기적인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향후 혼자 사는 노인들의 부양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7년 전국 성인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경제적 행복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것으로, 20대는 '일자리 부족'(35.3%)을 첫 번째로 꼽은 반면, 50·60대는 '노후 준비 부족'이 각각 50.6%, 66.9%로 뒤를 이었다. 20대는 불투명한 진로가 가장 걱정이고, 50·60대는 대책 없는 퇴로가 가장 불안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6.9%였다. 초고령 사회가 심화됨에 따라 노년 이후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이제는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대한민국 노인가구의 60% 이상은 자식과 따로 살고 있다. 이른바 '셀프 부양'의 개념이 필연이 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이미 노인 부양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자식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정부가 요양원 시설을 늘려왔지만, 그 수는 노인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수많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위기관리 체계나 소비자 안전대책은 미비하다고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쉽게 기대할 수 없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이렇게 사회 구성원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할 때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제 정세마저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어지며 군사적·경제적 공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시대에, 사회 구성원 사이의 연대마저 깨진다면 살아남은 누구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병법(兵法)의 가르침 중에 '이기려면 뭉치고 살려면 흩어져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2018년은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흩어져 각자도생을 해야 했지만, 2019년에는 함께 뭉쳐서 시대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