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이탈리아·1884~1920)

개성적인 인물초상과 누드화로 유명한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유대인 출신의 은행가인 아버지와 명문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늑막염과 장티푸스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화가가 되고싶어 했던 모딜리아니는 일반학교를 다니기 보다는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선생 중 한 사람인 구글리엘모 미켈리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는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재능을 이끌어냈으며 초기 작품 스타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06년 파리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새로운 예술을 주도하는 앙드레 살몽·피카소·후앙 그리스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때는 그가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여서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궁핍과 불확실한 미래는 그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했으며 무절제한 음주와 방탕한 생활도 이어져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이 시기는 결코 짧지 않았으며 그의 불행은 오래 지속됐다.

잔 에뷔테른은 이런 모딜리아니에게 큰 위안이 되는 여신과 같은 존재였다. 1917년 모딜리아니의 작품모델로 만나 사랑하게 됐지만 열네살의 나이 차이와 술과 마약에 절어 사는 모딜리아니에 대한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의 반대에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가정을 이뤘다. 모딜리아니는 1917년 겨울 최초이자 최후인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드작품에 대한 외설시비로 인해 몇 시간 만에 문을 닫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의 화풍은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스타일로 여겨졌으며 주목받지 못했고 정당한 평가도 없었다. 그림은 헐값에 팔려나갔고 생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건강도 악화돼 서른여섯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죽음 열흘 뒤 임신 9개월의 잔 에뷔테른 역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결혼 한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20년의 일이다.

모딜리아니의 죽음 후에야 사람들은 그의 사색적인 초상화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근대까지의 이어졌던 사실적인 초상화에 비해 모델에 대한 사색을 담고 내면의 오롯함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예술적 깊이에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이다.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은 낭만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을 담은 모딜리아니의 부인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 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모딜리아니가 자신과 그녀에게 다가올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며 그렸을 이 작품은 차분한 파스텔 톤이 안정된 화면을 이뤄 부드러운 깊이가 느껴지며 붓을 잡은 그의 애틋한 시선과 안타까운 사랑이 담담하게 전해져 오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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