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철현 제3대 거제시희망복지재단 이사장

"지금은 폐교가 됐지만,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의 춘당매 아래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과 관심을 잘 하라는 채찍으로 삼고 이사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지난 8월17일 거제시희망복지재단을 3년간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제3대 노철현 이사장이 취임했다. 두 달 간의 업무파악을 끝낸 노 이사장을 만나 앞으로 거제시희망복지재단 운영계획과 그의 인생철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먼저 일운면 구조라 출신인 노 이사장은 KT통영거제지사장과 거제함께하는우리마음 노인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는 어려운 시골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의 높은 학구열에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부산 동의공전(현 동의과학대학) 통신과를 졸업한 후 통신채신공무원이 됐다. 이때 당시 거제도는 우체국 안에 자동전화가 장승포는 4국·고현 2국으로 시작되고, 시골지역은 아직 수동이었다.

1978년 고현우체국으로 첫 발령을 받은 노 이사장은 "당시 고현우체국으로 발령받은 사람이 거제면우체국으로 가거나, 남해군 고현우체국으로 가는 해프닝이 자주 일어났다"며 당시를 회상하고 웃었다.

고현우체국에서 근무하다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직장에 복귀하자 '국가산업합리화정책'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가게 됐다. 시작은 채신공무원으로 했지만 1982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통신공사에서 거제와 통영을 오가며 일했다. 그렇게 일하는 도중 지역환원 차원에서 직원들과 봉사단체를 조직해 지역봉사활동에 나섰다.

"KT 지사장 재임시절 300여명 이상의 직원들이 근무했어요. 당시는 공기업 규모가 많이 컸어요. 지사장이 되니까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KT산하 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 거제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회복지시설에는 거의 다 가서 봉사했습니다. 목욕봉사를 비롯해 설·추석 쌀 나누기 등 직원들과 함께 힘든 줄 모르고 다녔지요."

노 이사장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토대인 자신의 봉사시작에 대해 얘기하며 "KT농구단과 함께 KT수련관에 시설 원생들 나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애광원·반야원 등에도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쳤다"고 했다.

또 이때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 우리마음재단'의 운영위원으로도 봉사를 해왔던 그는 매주 회의에 참석하면서 아동센타·다문화·노인일자리 등의 복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마음가짐도 커진 것 같았단다.

"당시 직원들은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했지요. '정보통신봉사상'을 3년 연속 수상해 시상금 100만원씩을 받았는데 매번 다시 복지시설에 후원했죠."

그는 그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거공회'라는 거제지역 공기업기관장들의 봉사단체를 만들어 지금도 매월 1~2회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퇴임 후 그는 고향 구조라에서 특용작물 '모링가'와 '고추농사'로 거제시 로컬푸드를 개발하고 양봉도 했지만, 항상 뭘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복지 관련 공부를 하던 아내가 그에게도 복지 분야 공부를 추천했다. 이때부터 사이버과정으로 복지사 공부를 시작해 거제대학 공학사 1호와 사회복지학 전공 행정학사 학위를 땄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그는 KT지사장 시절부터 봉사경험과 조직을 운영해본 사람으로 주변 권유가 있어 희망복지재단 이사에 지원하게 됐고, 2015년 거제시희망복지재단 이사로 왔다.

"그때 이미 거제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해오던 조계종 재단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법적인 결과가 나왔고 그 결론에 대해 내부적으로 원만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노 이사장은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인연으로 2003년부터 시작된 법륜 스님과 애광원 김임순 원장의 종교를 떠나 함께하는 진실한 봉사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은 통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복지재단이 고유의 업무를 잘해서 거제시민들께 꿈과 희망을 주는 재단으로 만들어 가겠다"며 "현재 세 곳의 복지관 관장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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