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⑤-거제, 도시를 디자인하라]전통과 현대가 함께 - 일본 요코하마 시
근대 건축물·사업 시설물과 현대디자인이 함께 요코하마시
공공시설에도 디자인 부여한 다치가와시

일본 도쿄는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꼭 들려야 하는 장소라 지칭될 만큼 도시 곳곳에서 건축과 디자인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본섬 도쿄에서 근대와 현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인 요코하마시는 한 쪽에는 미래도시와 같이 높게 솟은 건물과 길게 뻗은 이동통로가 눈에 띄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근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건물들도 곳곳에 놓여져 있다. 시대상으로는 100년 넘게 차이가 나는 건축물이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도시디자인이 도시 전체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의 표본이라고 불리는 도쿄도 다치가와시는 혐오시설조차도 미술을 부여해 볼거리·흥미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다치가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공공미술은 많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인증사진을 찍는데 여념 없게 만들 만큼 디자인이 돋보이는 도시다.

요코하마항을 중심으로 도시디자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요코하마시는 관람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신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반면 왼쪽에는 100여년이 넘는 역사의 건축물이 쇼핑몰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코하마항을 중심으로 도시디자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요코하마시는 관람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신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반면 왼쪽에는 100여년이 넘는 역사의 건축물이 쇼핑몰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적 건축물 활용한 현대 디자인도시, 요코하마

요코하마는 개항을 전후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과 사업시설들이 다수 남아 있다. 요코하마시에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활용해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개항도시에서, 제조업 중심도시였던 요코하마시가 20세기 말 이후부터 제조업이 심각하게 쇠퇴하자 새로운 살길을 찾기 위해 '문화예술과 관광진흥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과 성공을 이룬 사례라는 점에서 거제시가 귀감을 사야 하는 도시이다.

요코하마시는 유럽에서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하는 '창조도시(Creative City)'에 착안해 미나토미라이 21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미나토미라이사업은 요코하마시에서 도시재생을 위해 1965년에 기획했지만 본격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1981년으로, 사업은 1983년에 시행됐다. 이 사업은 4가지 규칙을 세웠는데 △새롭고 강력한 도심을 형성해 도시구조를 변형 △21세기 도시모델로 △정부·가나가와현과 함께 하는 국가적인 사업 △도시조성 기본협정을 운영하는 민간 회사가 개발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계획을 실천에 옮긴 미나토미라이 21사업은 현재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모델이 됐다. 해마다 현장을 견학하기 위해 국내외 공무원과 도시개발 전문가들이 요코하마시를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요코하마 시는 이 사업이 시민들에게 정책 인지도가 낮고, 도심지 중심으로 이뤄진 사업이라는 점, 문화·예술을 도구로만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와 디자인, 시민이 함께 어우르는 정책으로 도시 디자인을 펼치고 있다.

시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했던 역사적 건축물이나 창고와 같은 요코하마시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진 시설을 보존, 활용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

빨간색 벽돌건물 '아카렌가 소고(창고)'가 대표적인 예다. 1902년 지어진 정부 보세 창고로 1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89년 창고로서의 소명을 다한 뒤 9년의 보존·복원 공사기간을 거쳐 2002년 각종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문화상업시설로 재탄생했다.

개성 넘치는 쇼핑몰과 다양한 음식점들이 생겨나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와 같은 독특한 형태의 근대건축물은 이밖에도 많이 볼 수 있다. 시내 전역에 산재한 낡은 창고와 오래된 공장 등을 시가 직접 매입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행한 곳이 1929년 건립된 제일은행과 후지은행. 한 동안 빈 건물로 방치돼 있던 두 건물은 '뱅크아트1929(BankART1929)' 프로젝트를 통해 2004년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뱅크아트1929 프로젝트는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150여개의 근대건축물을 재생시킨다는 계획아래 제2·제3의 '거점 공간'들을 하나씩 확보해왔다. 지역의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고, 지역문화 창조의 중추적인 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로써 요코하마시는 신도심지인 미나토미라이 21 지역뿐 아니라 요코하마의 상징인 요코하마항까지 어우러져 구·신도심의 디자인을 보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 업소가 몰려져 있던 옛 집창촌 자리를 갤러리나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로 재개발해 예술 활동을 하게하고 크고 작은 시민참여 예술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실행하게 해 도시 분위기 전체를 뒤바꿨다. 요코하마의 역사를 잘 아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이곳이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집창촌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게끔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다치가와 시는 건널목조차 예술작품을 찾는 재미가 있는 곳으로 도로에 설치한 하수관 맨홀마저 유명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다치가와 시는 건널목조차 예술작품을 찾는 재미가 있는 곳으로 도로에 설치한 하수관 맨홀마저 유명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도시 곳곳 공공미술 전시관, 다치가와

도심 재생의 한 축으로 각광받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공원·거리·광장 등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에 조각·벽화 등을 배치하는 것이다.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거나 주변 경관과 어우러질 때 '포인트 상품'이 된다.

일본의 공공미술이 도심 재생의 한 틀로 발돋움한 것은 '파레(Faret) 다치가와' 프로젝트부터다. 다치가와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 이후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군 기지가 이전한 부지 6㏊(5만9000㎡)를 주택가로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을 전체를 아트(예술·art)화하자'는 발상 때문이다.

이 발상은 예술작품에 사업비 0.3%를 투입하고, 전문적인 공공미술 기획팀을 동원해서 37개국 90여 명의 작가가 만든 미술품 107점이 마을 곳곳에 배치하게 했다. 불과 5만9000㎡에 불과한 땅에 백화점·호텔 등 현대식 빌딩이 즐비하면서도 예술이 함께 하는 복합도심이 조성되자 누구나 보고 만지고 걸터앉을 수 있는 '공공의 장난감'으로 입소문 나면서 시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인근에 비행장이 있어 초고층 빌딩은 건설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보도 면적을 극대화해 보행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아울러 그 공간에 작품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할애함으로써 이 도시가 미술과 사람을 위해 얼마나 세심한지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시민 일상생활 깊숙이 예술이 함께 호흡하도록 한 노력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다치가와시의 첫 시작은 작품 선정과 배치 때문에 부정적 평가가 일기도 했다. 시민들이 봤을 때는 '굳이 이곳에 왜?'라는 의견이, 예술가가 봤을 때는 '이 작품을 감히 여기에?'라는 시선은 늘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성 역사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어제 설치한 것처럼 보존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점은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에서 가장 귀감을 삼아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 모든 것이 행정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닌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봉사단체가 관리를 하고 있는 부분은 놀라울 따름이다.

다치가와시 관계자는 "주민과 소통되지 않는 공공미술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공공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작품에 대해서는 작가와 의견을 교환해 철거하고 도시에 새로운 공기를 부여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설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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