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양달석 (59x90㎝·1954) - 한국근대미술 60年 展(1980) 출품작

가을은 아름답다. 잘 익어 껍질이 단단한 과일과 곡식에 가을 햇살이 반사되니 들녘은 화사하게 빛나고, 풍요로운 결실의 자연색은 다채롭고 평화롭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 맑음에 눈부시고 부드러운 바람에 대지는 맑고 정갈하다.

나는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이름난 곳을 찾기보다 주말을 이용해 우리 거제의 곳곳을 여행(?)하기를 즐긴다. 거제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기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안선이 으뜸이지만 자그마한 들녘과 산기슭, 돌담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골목길, 동백·석류·무화과나무가 피어 있는 소박한 정원을 가진 정겹고 소담한 마을도 적지 않다.

돌이켜 보면 이 여행(?)의 시작은 80년대 후반에 비롯된 것 같다. 대학 4학년 때 선배 작가 한분이 거제출신의 양달석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간이 흘러도 양달석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그 애잔함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아 나는 그해 가을 양 화백의 고향인 거제 사등 성내마을을 찾았다. 담쟁이 덮인 나지막한 성곽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다. 골목은 미로 같이 얽혀있었고 돌담은 여물게 쌓아 올려졌다.

저녁 무렵이었기에 밥 짓는 연기가 정(情)스러웠고 구수한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 감나무의 잘 익은 감의 선명한 색깔이 오랜 세월 뒤에도 손실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잠시 마을을 벗어나 자그마한 냇가에 서서 작은 들녘을 바라보니 '아!' 하는 더 없는 평화가 마음속으로 들어 왔다. 나의 거제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작품 '들'은 양 화백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성내마을의 성터와 작은 들녘 그리고 바람과 빛이 만든 풍광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진다. 양달석 화백의 조형세계는 자연속에 펼쳐진 동화적 유토피아의 구현이다. 기교보다는 관조하듯이 펼쳐놓은 조형요소들이 꾸밈없는 순진무구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인다. 평화로운 녹색, 짙은 에메랄드그린, 풍성한 노랑과 갈색조 등으로 자연을 구현한 작품들은 끝없이 자연을 예찬하고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노래는 마음의 묵직함 울림을 가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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