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完)]경남 인구 대비 자살 1위 도시 거제, 대책은 없나
일본, 원인부터 정확히 분석...자살자 데이터화 맞춤식 대책
선진 경기 남양주·서울 노원구...민·관 업무분담 체계적
게이트키퍼 활용으로 맞춤식

2015년 말께부터 시작된 조선 산업 침체는 거제시 경제에 직격탄을 안겨줬다. 거제시민 70%가 조선업 종사자이거나 가족인 만큼 조선 산업의 위기는 거제시의 위기였다. 중앙정부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자구안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라 했고, 그 실행의 칼날은 구조조정이었다. 정규직 직원들은 구조조정의 칼날에, 하청·협력업체 직원들은 물량이 줄면서 회사가 폐업하자 줄줄이 실직자가 됐다. 그 여파는 조선 산업 관계자들의 자살로 이어졌다.
죽음 직전에 선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노력은 지자체에서부터 요구된다. 하지만 정신질환의 조기발견 및 치료와 상담기관을 통한 상담도 중요하지만 거제시는 독립적인 정신건강증진센터도 없는 실정이다. 조선업 퇴직자의 구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조선업희망센터 등 있지만 정작 정서적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은 부족한 현실이다. 자살문제는 거제시뿐 아니라 우리나라,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타 지자체 역시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 현재 거제시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업 도시의 창원시와 울산광역시 동구에서 계획하고 있는 자살대책방안과 조선업 실직자를 위한 정서관리 방안을 찾아본다.
또 자살률 1위 불명예를 안았던 서울특별시 노원구의 자살률 대책 방안과 노인 자살예방에 나선 경기도 남양주시의 현 주소를 살펴본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으로 자살률 감소 추이를 계속 보이는 일본 정책도 알아볼 계획이다.
이는 거제시민이 더이상 이웃을 잃는 슬픔을 갖지 않고 지역경기 침체와 맞물려 어두운 도시로 변해버린 거제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2016년 거제지역 자살자는 연간 90명으로 사상 최고 기록이 나왔다. 이후 '자살'에 집중하기 시작한 거제시는 발 빠르게 움직인 거제시 보건소 실무자들의 노력으로 경남 지역에서는 최우수 '자살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지자체가 됐다.

기획취재 과정에서 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창원·울산광역시 동구 뿐 아니라 전국에서 자살정책 우수 지자체인 경기 남양주시와 서울시 노원구에서 만난 자살 정책 관련 담당 공무원들도 하나 같이 "거제시는 잘하고 있는데 굳이 왜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을 한 번씩은 다 물었다.

그런 거제시보건소의 노력 덕분인지 연간 90명의 자살자가 나왔던 2016년과 비교해 2017년은 자살자가 주춤했다. 경제가 조금씩 되살아난다는 희망도 한 역할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2018년, 전문가들이 되살아날 거라고 했던 지역경제는 장평동, 능포동, 옥포동을 지나 거제의 중심지인 고현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면서 자살미수·자살 사건 등이 계속해서 끊이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자살 정책'을 모범적으로 시행하는 일본과 경기 남양주·서울 노원구 사례를 통해 거제시가 변화해야 할 점에 대해 살펴본다.

일본, 데이터 중심의 '자살' 대책 마련

일본의 자살대책의 선두주자로 나선 건 자살자들의 '유가족'이었다. 유가족들은 왜 본인의 가족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 분석하고 이를 위한 대책을 국회의원들에게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자살대책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이다.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자살자들의 배경과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파악하면 이는 자살종합대책센터의 데이터로 남겨진다. 이 데이터는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활용해 자살대책 관련 조례나 법을 만드는데 쓰인다. 이 선순환 구조가 일본의 자살률을 눈에 띄게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은 당초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봤다. 죽고 싶은 사람들이 죽는데 뭔 대책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해 3만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서 '자살은 사회적인 타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인식 변화 역시 유가족들의 목소리덕분이었다.

자살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만 활용하던 유가족들의 정보는 자연스럽게 남겨진 가족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게 됐다. 이는 유가족들과 '자살대책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의 유대관계가 형성되면서 그들의 삶 역시 국가에서 보호해줘야 하는데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다.

일본의 성공배경엔 국회가 있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2006년 9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 103명으로 늘었다. 자민당·입헌민주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자살 정책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예산에서도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올해 자살예방에 투입되는 예산은 162억원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 해 7500억원이 넘는 돈을 자살예방에 쏟아 붓고 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않고 사회 전체가 팔을 걷고 나선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안겨준다.

데이터를 구축하는데 있어 '수치'가 아닌 자살자들의 환경에 역점을 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모토하시 유타카(64) 일본 자살종합대책센터장은 "자살과 관련한 각종 사례를 분석하고 각 지자체마다 자살자들의 원인분석 역시 자살종합대책센터에서 객관적으로 따진 후 지자체에 알려주면 지자체의 실정에 맞도록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 나간다. 한국에서도 데이터화만 잘 구축돼 있다면 효과적일 것"이라며 "거제시가 30~50대 자살률이 높은데 대해 충분히 사회적 환경 등 데이터화를 구축할 수 있는데 국가 차원이 아니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거제시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김영경 강사가 지난 6월27일 함께하는우리마음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 참여자 300여명을 모시고 노년기 우울증예방 및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거제시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김영경 강사가 지난 6월27일 함께하는우리마음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 참여자 300여명을 모시고 노년기 우울증예방 및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서울 노원구, 이 아니면 잇몸

경기 남양주시나 서울시 노원구는 일본처럼 체계적인 데이터 구축이 자리 잡혀 있지는 않다. 업무분담이 체계적이다. 민·관이 함께 운영하는 자살예방 캠페인만 봐도 그 많은 캠페인 가운데 겹치는 게 없다.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산을 많이 투입하지는 않지만 '게이트키퍼', 자살의 신호를 발견하고 대처하는 전문 집단을 화수분처럼 양성했다.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살고위험군을 분리해 자살예방팀이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하는 방안도 자살자 수를 줄이는 방법이 됐다.

특히 마을 주민들을 가까이서 봐온 이들 중심으로 이웃사랑봉사단을 구성해 매주 한차례 이상 짝을 맺은 가정을 방문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등 대면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 역시 '몸 대신 잇몸으로' 전략이다.

이웃사랑봉사단 관계자는 "자살예방사업은 몇 개의 단체의 힘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면서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진행이 돼야 하는데 이는 물질적 지원이 아닌 심적 지원이라 행정 차원에서 뒷받침이 돼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원시 보건소관계자는 "중장년층 자살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혼자 사는 50대 남성에 대한 전수조사에 이어 '50+ 싱글남 지원 전담반'을 구성해 맞춤형 지원을 추진 중"이라며 "거제시도 30~50대 자살자들과 연동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자살자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 30~50대의 죽음을 막아라

거제시 보건소의 자살대책 업무는 두 가지에서 막힌다. '시민 고유정보'와 '우리는 괜찮다는 시각'이다.

최근 거제시의 자살자 수가 늘어난 주요 원인인 30~50대의 죽음은 대부분 조선산업 노동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 대한 정보는 죽음 이후에만 알 수 있다. 특히 죽음을 막기 위해 삼성·대우 양대 조선소들에게 '자살 예방교육'을 실시하고자 요청을 하거나, 실직 위기에 놓였거나 실직을 당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지만 거절 당하기 일쑤다.

시 보건소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자살 예방을 위한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전문가 집단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현실비관 자살이 많은 실정에서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과의 만남조차 쉽지 않아 사업 이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30~50대 부모세대가 흔들리면서 자녀 세대도 함께 흔들려 10대들이 우울·공황장애 등을 호소하고 자살 시도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행인 것은 교육계에서의 참여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 보건소 관계자는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한 학교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에 이르면서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사들이 체감하는 것 같다"며 "단발성 행사는 효과가 없을지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력 부족은, 조직 개편으로 힘 실어야

거제시가 오는 9월 조직 개편을 앞둔 가운데 시 보건소 질병관리계는 기대했지만 인원이 결국 보충되지 못했다. 질병관리계 실무자 1명이 현재 거제 전 시민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관리를 모두 도맡고 있는 실정은 심각한 사항이다.

특히 치매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경제도 침체돼 자살자들을 위한 우울증 예방 등의 사업도 함께 진행하려면 1명으로는 부족한 실정이다.

권민호 전 시장 재임 당시 거제시보건소도 자살률 증가에 따른 인력보충과 부서신설을 논의해 왔지만 권 전 시장이 직을 사퇴하면서 진행되던 일들이 모두 중단됐다. 인구 유출을 고민하는 현 시정이라면, 자살률을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된다는 게 시 보건소의 생각이다.

시 보건소 관계자는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형식상의 협약이 아닌 정보를 교류하고 실질적으로 '자살'과 연계돼 있는 이들에게 자살예방효과가 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위기에 처해 있는 조선산업 노동자들과 직접적으로 자살 예방 대책을 논할 수 있는 환경, 게이트키퍼 인력 양성을 위한 예산 편성을 중심으로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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