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9년 특집] 거제신문 최윤영 편집국장이 둘러본 거제와 대마도 역사

▲ 대마번주 종가 묘소인 반쇼인(萬松院)에는 32대에 걸친 무덤이 있으며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의 무덤도 볼 수 있다

역대 한반도 왕조에 복속된 대마도

역대 한반도의 왕조들은 한반도 동남문화권에 속하는 대마도가 자국 영토의 일부임을 확인했다. 대마도가 한반도 왕조에 복속하려고 하지 않고 반기를 들 때는 어김없이 정벌했다. 1389년 고려 창왕, 1396년 조선 태조, 1419년 조선 세종의 기해동정(己亥東征)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제는 이들 왕조가 벌인 대마도 정벌의 전진기지였다. 기해동정에 대한 연려실기술 등 조선의 기록을 보면 이종무가 마산포에서 떠나 거제에 닿은 다음 배 227척을 준비해 종군을 명하여 동원된 군사가 1만7285명, 그리고 65일간의 식량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벌을 끝낸 7월 병오일에는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거제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상왕이 명하여 법주(法酒·궁중에서 만든 술)을 가지고 와서 위로했다. 이종무를 비롯한 활약자들 승급시켰고 전사자를 분류해 곡식을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대마도는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옛부터 해난사고로 표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마도에 있는 대마해협조난자추도지비 비석에는 "근세 대마도의 외교에서 조선의 표류인을 송환하는 것이 주 임무 중에 하나였다. 대마도민들은 해협을 공유하는 이웃으로서 불행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추도의 비를 건립한다"고 적었다.

1950년 10월 12일자 대마신문(對馬新聞)에는 보도연맹원들이 거제에서 수장돼 일본 대마도 방면으로 밀려왔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한창 진행되었을 때 거제를 비롯해 마산 진해 통영 남해안에서 총으로 학살한 다음 이들의 손과 발을 묶어 바다에 수장시킨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대마도의 유력가문이 대대로 남긴 기록인 대마도종가문서에는 거제 지세포에서 출발한 조선인이 대마도 해안에 표착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 반쇼인은 거제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가 일본 본토로 들어갈 때 반드시 들렸던 곳이다.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 반환 공식 요구

대한민국 정부는 거제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하는 한일관계사를 바탕으로 1949년부터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해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영유권 주장 및 반환요구 성명을 발표하고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기로 했으므로 불법적으로 점령된 대마도도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원래 우리나라 땅인데 1870년 일본이 불법적으로 점령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패전국 지위였던 일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불안해했으며 언론에서는 대마도의 위기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는 미국이 안정적인 동북아 질서의 구축을 위해 한국 정부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당 문서는 1951년 4월 27일 한국 정부가 대마도에 관해서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소유권, 법치를 분명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51년 7월 9일에 대마도는 일본이 오랫동안 통제하고 있고 이번 평화조약(포츠담 선언)은 대마도의 현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대마도의 날' 맞대응

이후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주장은 지난 2005년에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그해 3월 16일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일제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시마네 현으로 편입 고시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한·일관계는 급속하게 경색됐고 한반도 동남권의 많은 지자체들이 일본과의 교류를 중단했다.

김해시의 무용협회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방문 중단, 양산시 아키타현 유리혼조시 방문 취소, 밀양시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시장 초청 취소 및 시마네현 야스기시와의 교류 전면 중단, 진주시 시마네현 마츠에시 교류 중단, 사천시 후쿠오카현 후쿠치정 교류 연기, 합천군 마라톤 대회 가가와현 미토요시 초청 취소 등이 잇따랐다.

이밖에 경상북도의 시마네현과 자매결연 파기, 광주광역시 센다이로 폐지, 강원도 돗토리현 직원 상호 파견 교류 연기 등 광역단체의 격한 반응도 있었다.

특히 당시 마산시의회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대응해 2005년 3월 18일에 대마도의 날을 제정했다. 대마도의 날로 정해진 6월 19일은 이종무가 마산포를 출발한 날로 알려졌으나 거제라는 설도 있다.

마산시의회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선포에 대응해 반대 결의안을 내려다가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기로 뜻을 모았다. 반면 거제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제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사의 중심돼야

거제가 고대로부터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사실이 속속 들어나면서, 거제 사람들이 주축이 돼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고 대마도의 날도 선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대마도가 하고 있는 것처럼 관광자원을 확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마도시는 도심 곳곳에 조선통신사의 기점이었음을 알리는 공공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관련 지역축제를 열고 조선통신사 알기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간 대마도 시 정부가 한일관계사 역사탐방 콘텐츠 확보에 주력한 결과 이제 대마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 한국 관광객이 됐다. 매년 20만 명 안팎의 한국인들이 방문하며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 대형마트로 물건을 사러 가는 현지인들도 늘어나 거제 또한 노력에 따라서 일본 관광객을 충분히 유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거제도와 대마도가 각자 자국에서는 변방에 속했지만 역사적 한일관계사에서는 중심에 있었기에, 이에 대한 역사문화 관광콘텐츠를 확충해 역사의 증거로 보존해야 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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