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漢字)를 제한할 것

과거의 우리 문학, 과거의 우리 교육이 한문의 전제 밑에서 받은 유독(流毒)을 생각할 때에 나는 즉각으로 ‘한자(漢字) 전폐론’을 쓰고 싶다.

그러나 습관이라는 제2의 천성이다. 몇 천년 동안 사용하여 오던 한자를 일시에 전폐하고 마는 것은 역시 극난(極難)한 일일뿐 아니라 통용하는 한자를 일정한 자수(字數)에만 제한하면 별 불편은 없을 것 같으니 구태에 전폐하여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나는 한자 제한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간단히 말하려 한다.

가) 통용하는 한자를 일정한 자수(字數)에 제한할 것-일천자 내외에.
나) 외래어와 인명, 지명, 고유명사는 전부 국문으로 쓰되, 한문의 인명, 지명에는 한자를 국문밑에 쓸 것.
단 한문의 고유명사에만 한하여 통용되는 범위안에서 한자를 사용함음 무방함.
다) 통용자 만으로 자전(字典)을 만들 것.
라) 보통학교의 교과서에 통용자전부를 편입시킬 것.

이 몇가지만 완전히 실행되면 한자를 전폐하지 아니하더라도 별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우리에게 한자제한운동이 일어나고 그것이 여론의 힘을 얻어 성공된 후라야만 완전히 실행할 수 있는 문제이니 우리의 지금 주의할 일은 역시 개인 개인끼리 되도록 한자를 적게 쓰도록-되도록 궁벽한 한자를 아니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 문법에 맞추어 쓸 것

세계 어느 민족의 그것보다도 질서적이요 규칙적이던 우리 문자는 과거 몇 백년 동안 함부로 쓴 소치로 지금은 말 못하게 헝클어지고 말았다.

사람이라는 한 낱의 말을 「사람, 살암, ㅅ·ㄹ·ㅁ, ㅅ·ㄹㅇ·ㅁ, 사ㄹ·ㅁ, 살ㅇ·ㅁ, ㅅ·람, ㅅ·ㄹ암」의 여덟가지로 쓰고 나는 이라는 「는」 한토를 「는, 난, ㄴ·ㄴ」의 세가지로 쓴다.

그 뿐 아니다. 우리는 「나는 학교에 간다」는 한마디를 쓸 때에 「나는학교에간다」 「나는 학교에  간다」 「나는 학교에간다」 「나는 학교에 간다」 「나는 학교 에 가 ㄴ 다」같이 제각기 제 맘대로 띄어 쓴다.

한문을 쓸 때에 일점일획을 경솔히 하지 아니하고 영문(英文)을 쓸 때에 한글자를 잘못 띄우지 아니하는 우리가 자기 글을 쓸 때에는 함부로- 되는대로 쓰는 것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표준할만한 사전 하나 없고 완성된 문법조차 없는 현상이니 어느 것을 좇아야 좋을런지 알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깁더 조선 말본」 「말의 소리」 「현재조선문전」같은 것은 모두 그의 작자가 일생의 성력을 다하여 쓴 빈약한 우리 출판계의 큰 수확이다. 「이것이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으려니와 우리의 연구재료됨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세상만사란 무엇이든지 천만의 실패자가 있고야만 하나의 성공자가 생기는 법이다.
우리의 문법완성사업도 결코 주시경, 김과봉, 이규영…, 몇 분에게만 맡겨서는 아니된다.

더구나 숨었던 진리 숨었던 규칙을 발견하는 것은 문법전문가 사업이라 할려니와 이것을 일반에게 보급시키는 것, 특히 쓰는 방법을 통일케함에는 문학가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영어의 「스펠」을 통일시킨 것은 영국언어 전문가의 문법책이나 사전이 아니고 도리어 세익스피어의 극본이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자기 글의 작문법을 사전이나 문법에서 배우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못한다.

대다수 민중은 소설 극본 시 논문의 걸작을 읽는 중에 자연 외우게 김과봉씨의 「깁더 조선말론」에는 「좋은 글」 「날적」을 부록으로 내고있는데 일반 민중은 여하히 여덟가지의 「사람」을 쓰고 있는 우리 현상이 무엇보다도 웅변으로 이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의 문자통일사업은 일방면으로 문법의 완성과 사전의 출판이 절대로 필요한 동시에 일방면으로 가치있는 저작을 문법의 규칙대로 인쇄해 일반민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어느 방면으로 보던지 금후의 우리 작자는 문법에 대하여 상당한 연구와 상당한 이해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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