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지심도, 관광자원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 일제잔재의 관광자원 활용방안

▲ 서귀포시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전투기를 감추기 위해 활용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을 방문한 관광객들

천혜의 자연관광자원으로 평일 평균 관광객 4만명, 월 평균 관광객 130만명이 넘는 제주 서귀포시에는 특별한 투어가 있다. 일명 다크투어(Dark Tour).

다크투어는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 또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이라고도 불리고 국립국어원에서는 '역사교훈여행'으로 우리말 다듬기를 했다.

서귀포시 대정읍사무소의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대정읍 다크투어는 제주의 비극적인 역사와 함께 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과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4.3사건 당시 유적이 산재해 있다.

다크투어로 지정된 50곳의 일부는 형태조차 사라진 채 안내표지판만 설치돼 있기도 하고 일부는 과거모습 그대로 유지돼 있고 또 일부는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

대정읍사무소 관계자는 "4.3 사건의 현장은 주민 분들이 후손에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지만 일제 잔재를 남겨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론이 나뉘는 상황"이라며 "제주의 역사를 어떻게 알릴 것인지 효과적인 방안을 찾다가 외국 사례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 한국전쟁 당시 공군·육군·해병대 연합군인 평화군이 집결했던 '평화의 터'

하지만 다크투어에 대한 관광객의 관심은 대정읍의 바람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활용한 것이 '올레길'이었다.

대정읍사무소 관계자는 "올레길은 제주하면 떠오르는 관광지 중 하나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곳이기도 하다"며 "올레길 10코스에 다크투어 중 가장 관심있어 했던 4.3 유적지와 일제 동굴진지 등을 넣으면서 제주와 역사를 함께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대정읍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정주헌(64)씨는 "주로 올레길 10코스는 초등학생을 동반한 가족단위 관광객이나 50대 이상의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노년층이 걷기에도 무리가 없는 코스로 곳곳에 제주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를 알 수 있어 꾸준히 찾는 관광객이 많다"고 소개했다.

친구들과 다크투어 중인 김창길(61·서울)씨는 "대부분의 올레길을 다 걸어봤지만 10코스는 자연경관과 역사가 한데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에게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줘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며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제주도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제주 4.3사건에 희생된 양민 132명의 분묘지인 '백조일손지지'

제주는 역사를 잊지 않았다

다크투어 코스 중 하나인 서귀포시 대정초등학교는 1908년에 지어진 제주도에서 2번째로 오래된 학교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일학교로 세워져 초기 교장 6명이 일본인이었고 해방 후 대정국민학교에서 지금의 대정초등학교에 이르렀다. 학교 곳곳에는 해방축하기념비부터 국·공군의 훈련장소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놓여 있다.

대정초등학교 40회 졸업생 강정구 할아버지는 다크투어 장소의 50곳 중 하나일 뿐이지만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관광객이, 서귀포시가 고맙다. 강(83)씨는 "비극적인 역사라 아프고 부끄럽다고 할 수 있지만 제주 4.3 사건도, 일제강점기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서귀포시 관광과 관계자는 "다크투어의 핵심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 지나쳤지만 역사적 현장에 함께 했던 것들을 되짚는 것"이라며 "일부 관리가 안 된 등록문화재조차도 현재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교훈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1941~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비행기 격납고로 이용됐던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주변은 이제 마늘밭이 됐다. 마늘밭 사이로 20곳의 비행기 격납고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 서귀포시 대정초등학교 안에 있는 공군 표지석과 해방축하 기념비

제주는 멈추지 않는다

서귀포시는 일제 강점기 등의 전쟁유적을 평화와 인권을 교육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기존의 다크투어는 비극적 역사를 일방적으로 소개했다면 서귀포시가 새롭게 변모할 다크투어는 비극적 역사를 딛고 일어선 제주의 현재와 세계의 평화, 인권을 주제로 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80억원(국비 70%)을 들여 다크투어리즘을 주요 주제로 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5억1700만원을 투입해 다크투어리즘 기본계획수립 용역과 지역역량 강화사업 등을 시행한다. 서귀포시는 기본계획부터 지속가능한 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제주발전연구원·제주대학교·제주민속예술총연합회 등 각계 전문가와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주민 등 15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 모슬포알뜨르비행장들이 분포돼 있는 4.3공원 내 마늘밭.

이밖에도 다크투어 종합 커뮤니티센터 신축과 다크투어 코스 안내도 설치 등에 19억3000만원, 유적현황조사와 테마별 루트조성 등에 8억7000만원을 투입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나머지 52억 원은 해양관광축 연계도로 개설과 주거지역 도로환경 개선에 사용할 예정이다.

김향욱 서귀포시 도시건축과장은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군사유산에 대한 정비를 통해 다크투어리즘 프로그램을 제대로 선보일 계획"이라며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종합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해 수학여행으로 각광받는 서귀포시를 관광도시뿐 아니라 역사도시로 만들어갔다"고 강조했다.

서귀포시 관광과 관계자는 "서귀포시 곳곳에 국가지정 등록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특히 대정읍은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나 마찬가지"라며 "더 다양한 다크투어 루트를 마련해 세대 및 연령 별 입맛에 맞게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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